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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날/영화

영화추천 버드박스 줄거리 결말해석

by 워니의서재 2019. 3. 4.

 

※버드박스 줄거리 요약

 

주인공 '멜러리 헤이즈'는 임신한 상태로 남편과의 이별로 큰 상처를 받아서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생활합니다. 동생 제시카는 언니 멜러리가 안타까워 마트에서 음식을 사다가 언니의 냉장고를 채워주려고 집에 들릅니다.

 

동생은 언니에게 외출 좀 하자고 제안하지만 주인공은 어차피 네가 먹을 것도 다 사다 주고 나갈 이유가 없는데 왜 나가야 하냐고 반문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의 대해 설명합니다.

 

이 대사에서 주인공 '멜러리'의 심경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아주 외롭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자신을 그림으로 비유하여 말합니다.

 

이 대사는 영화 초반부에 나옵니다. 이 대사를 보고 영화 버드 박스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바로 이거구나! 싶었습니다. 버드 박스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루마니아로부터 시작된 집단 자살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됩니다. 그러나 멜러리와 동생 제시카는 별로 개의치 않고 신경 쓰지 않고 평상시 행동하던 대로 행동합니다. 둘은 초음파 검사를 하기 위해 산부인과로 향합니다.

 

초음파 검사하는 장면에서 멜러리는 자신의 태아에게도 관심이 없다는 듯 행동해서 담당의사는 억지로 아이를 낳는 거라면 차라리 간절하게 아이를 기다리는 부부들한테 입양하는 편이 더 나을 거라고 조언합니다.

 

 

멜러리는 초음파실에 나오자마자 건물 유리벽에 자신의 머리를 수차례 박고 건물 밖으로 뛰어내리는 사람을 목격하고 그제야 아까 전에 본 뉴스를 떠올립니다. 다급해진 멜러리는 동생 제시카를 찾아 급하게 차에 오르고 병원에서 멀리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멜러리가 잠깐 휴대폰을 꺼내려고 고개를 숙인 사이에 동생 제시카는 알 수 없는 존재와 마주하게 됩니다. 제시카는 심하게 동요하고 갑자기 달리는 차선을 바꿔 트럭에다가 들이박으려고 합니다.

 

결국 차는 전복되고 제시카는 달리는 트럭에 몸을 던져 사망하고 멜러리는 급하게 뛰다가 사람들한테 치여 넘어지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한 여인은 임산부라서 집으로 데려와야 한다며 멜러리에게 뛰어가다가 제시카와 마찬가지로 알 수 없는 존재와 마주하게 됩니다.

 

"엄마?" "가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불길에 휩싼인 승용차에 타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멜러리는 한 남자와 함께 어떤 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집안에는 밖에서 일어나는 재난과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대피한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영화 속 더글라스는 매사에 부정적인 성격으로 나옵니다. 자신의 아내가 멜러리를 구하려다가 사망했기 때문에 멜러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영화 버드 박스 속 더글라스에 대사에서 그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뒤늦게 들어온 임산부 올림피아가 싫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올림피아의 아버지가 자신의 집 앞에 흉물스러운 건축물을 지어서라고 합니다.

 

올림피아는 좋은 환경에서 성장해서 타인의 고통을 잘 이해하고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로 묘사됩니다.

 

영화 속 대사를 보면 더글라스는 타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타인은 믿을 수 없는 존재. 적으로 간주하고 낯선 이 가 집에 들어올 때마다 총을 겨누고 협박합니다.

 

영화 속에 더글라스의 과거가 묘사되지 않았지만 그의 성격에서 추측해 보자면 아마도 타인들로부터 수많은 배신을 당하고, 그것을 계기로 타인을 믿지 못하는 성격이 되었을 것입니다.

 

버드 박스 영화 속에서 '멜러리'는 자신이 죽으면 아이를 맡아달라는 올림피아의 말에 여자아이를 맡게 되고, 여자아이와 자신의 아들과 함께 강줄기를 따라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멜러리는 자신의 아들은 '보이' 올림피아의 딸은 '걸'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도 연결되고 싶지 않았던 멜러리의 감정상태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타인과의 접촉으로 계속해서 사람이 죽어나가자 더글라스는 아무도 받지 않으려고 하지만 집 밖에 낯선 이 가 절실하게 들여보내 달라고 부탁하자 타인의 마음을 잘 공감하는 올림피아는 급기야 문을 열어주고야 맙니다.

 

이후 영화는 극 긴장감을 불러옵니다. 한 번의 실수로 더 이상 집에 없게 됩니다. 결국 멜러리와 아이들이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보아도 자살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정신병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입니다. 집에 들어온 이는 정신병자였습니다. 그는 악령이라고 부르는 알 수 없는 정체를 보고 여러 컷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정신병자는 알 수 없는 정체를 보고 너무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타인들에게 안대를 벗고 보라고 강요합니다. 

 

정신병자 또한 영화 초반부에 멜러리가 언급한 대사 중에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회에서 격리되어 정신병동에 갇힙니다. 더글라스는 정신병자를 범죄자로 규정합니다.

 

멜러리는 안대를 가리고 산속을 걷거나 뛰는 모습에서 앞이 보이지 않으면 얼마나 불편하고 공포스러운지 간접체험으로 느끼게 해 줍니다. 아이들은 여정을 떠나기 전에 눈을 가리고 걸어 다닐 수 있게 훈련을 받습니다.

 

그리고 '안전한 피난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향해 여정을 떠나는 과정에서 누군가 자꾸 멜러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안대를 벗으라고 유혹합니다.

 

※버드박스를 본 저의 생각

 

우리가 지구라는 박스에 갇혀 자유롭게 날지 못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박스 안에 갇힌 새로 표현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먼지 한 톨만 한 지구 안에 갇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타인을 조롱하기도 합니다. 특히 장애인, 정신이상자, 은둔형 외톨이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동정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거나 경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둘 다 잘못된 것입니다.

 

동정심은 사람의 마음을 더 비참하게 만들고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행위입니다. 혹시나 동정심과 배려를 착각하시면 안 됩니다. 배려는 장애인이나 정신병자를 우리와 같은 사람이지만 불편한 점이 있을 뿐이다라고 생각하고 이해해 주는이고 동정심은 그 사람의 불편한 점을 불쌍하게 보는 것입니다.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개념입니다. 그냥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대우해주는 것이 가장 올바른 태도입니다.

 

 

※버드박스를 보고 나름대로 해석

 

악령으로 묘사되는 알 수 없는 정체를 보고 사람들이 자살하게 되는 원인은 아마도 그 사람의 결핍을 보여주고, 죽어서 사후세계에 오게 되면 네가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다고 유혹하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아래 사진 속 인물에 대사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엄마? 가지 마세요."

 

프랑스 소설가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작품 중 '타나토 노트'라는 사후세계를 다룬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사후세계를 탐험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실험합니다. 사후세계를 들어가기 전에 여러 단계 중에서 자신의 욕망을 보여주는 단계에서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계속 죽어버립니다.

 

그러다 한 여성이 죽지 않고 돌아오게 되고 그곳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곳은 그 사람이 원하는 욕망을 보여주고 체험까지 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이룬 사람들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영혼들이 육신으로 돌아오지 않아 사망하게 됩니다.

 

버드 박스에서도 이와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악령들은 그 사람이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 무의식의 욕망을 보여줌으로써 자살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사후세계에서 자신의 욕망을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자 거침없이 무언가에 이끌리듯 자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지나친 욕망으로 도를 넘어서서 타인을 해치게 되고, 결국 자신까지 스스로 파멸하게 되는 것을 암시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멜러리가 숲을 배회할 때도 계속해서 새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유혹하는 장면도 묘사되었기 때문입니다.

 

 

멜러리는 급물살을 내려갈 때 보지 않고 노를 저으면 굉장히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자신의 아들이 아닌 타인의 딸 걸에게 안대를 벗으라고 지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하겠다고 하고, 걸이 겁에 질려 무서운 내색을 드러내자  마음을 바꾸고 그냥 모두 안대를 가리고 급물살을 타고 결국 안식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멜러리가 더 이상 자신의 가족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지 않고 모두 함께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돌아선듯합니다. 여러 번의 위기를 넘기고, 시각장애인들만 사는 건물에 도착합니다. 그곳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만 살고 있고, 굉장히 평화로워 보입니다. 새도 날아다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립니다.

 

멜러리는 드디어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 줍니다. 함께 고난을 겪고 위기를 넘기자, 드디어 아이들과 연결되어 살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멜러리는 안대를 착용하고 직접 거리를 걸어보는 경험을 해보고 나서야 시각장애인의 고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시각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을 말할 수는 있어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전설의 밤'은 1000년을 주기로 밤이 찾아오는 행성의 이야기입니다. 밤이 없는 사람들은 밤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인물들의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고 말할 수는 있지만 경험한 사람의 감정까지는 느낄 수 없습니다. 소설 속 대사 중 일부를 발췌하였습니다.

 

"거짓말이야! 자네는 상상할 수 없어! 자네의 두뇌는 무한이나 영원과 같은 개념 이상의 어떤 개념에도 적합하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어. 자네는 단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지. 사실의 일부분조차 자네를 당혹하게 만들 수 있네. 그리고 사실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자네의 두뇌는 이해 범위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직면하게 되는 걸세. 자네는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미쳐버릴 거야! 의심할바 없이."

 

 

◆ 시각장애인의 외출을 간접체험으로 유도?

 

사실 시각장애인이 보행을 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위험요인들은 다 언급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리고 이게 비장애인들만 일방적으로 뭐라 할 수도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들은 시각장애인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도 못하거니와 시각장애인이 보행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또, 그들이 충분히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인지할 만큼 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요즘은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활동지 원사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을 한다. 


그렇기에 홀로 집 밖으로 나서면 많은 위험들과 마주해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마주오는 사람을 겨우 부딪히지 않고 스쳐 지나갈 정도만 피하는 습관에 대해서는 비장애인들도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다. 

상대방이 이만큼 피할 테니 나도 이만큼 피하면 안 부딪힐 것이라는 계산은 위험할 수 있다. 어떠한 이유로든 상대방이 내가 예상한 거리만큼 이동하지 않는다면 결국 부딪힐 수밖에 없다. 

 

시각장애인에 관련된 기사 일부 발췌.

http://www.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06&NewsCode=00062018061513520484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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