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스
탈레스 Thales 기원전 624년~기원전 546년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우주의 이치를 탐구하느라 하늘을 보면서 정신없이 걷다가 발밑의 웅덩이를 미처 보지 못하고
꼴사납게 넘어지고 말았다. 이것을 본 트라키아(발칸반도 남동부 지역) 출신 하녀가 큰소리로
비웃으며 말했다. "우주의 이치를 탐구한다는 분이 발밑의 웅덩이도 못 보다니요"
생계에 쫓기는 사람은 삶과 세상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다. 하루하루
닥치는 일들 들 해결하기에도 벅차다. 또한, 일상에 너무 찌들어 있어서 현실에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삶과 세상의 진정한 의미를 고민하기 위해서는 절박한 일상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을 만큼 물질적,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을 할 수 있는 조건으로 여유를
꼽은 이유기도 하다. 밀레투스의 경제적 성공은 이러한 '여유'를 가능하게 했고, 철학의 탄생지가 될 수
있었다.
헤라클레이토스
고대 그리스 최대의 무역도시였던 에페소스 Ephesos에서 태어났다. 제사장 자리를 대대로
물려받을 만큼 대단했던 에페소스 명문가 출신 귀족적인 성향을 지닌 괴팍한 사람. 무지한
민중에 대한 혐오도 숨기지 않은 플라톤이 말하는 '철학자가 될만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귀족이었던 그는 생계 걱정에서 벗어나 조용히 사색할 여유가 있었고 세상일에서 한발 물러서
있었으므로 당장의 이해관계를 떠나 모든 일의 근본을 깊이 바라볼 수 있었다.
'만물은 흐른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강물도 흘러가지만 나도 또한 변한다. 세상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인다.)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세상 모든 것은 대납하고 투쟁하는 가운데 의미를 갖는다. 피곤함이 있어야 휴식도 즐겁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배부름 또한 없다. 모든 것은 대립되는 다른 쪽과의 투쟁 속에서만 의미가 있다.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라는 유명한 말도 있다.
파르메니데스
엘레아 Elea (오늘날 이탈리아의 베리아 지방)에서 태어났다. 인구 1000명이 안되는 소도시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없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우리는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이 없다고 말할 뿐이다.
'없음 자체'를 머리에 그릴 수 없다.
없는 것이 없다면 세상에는 있는 것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있는 것이 여러 개 있으려면
있는 것 사이에 허, 곧 없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은 말 그대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에는
하나의 있는 것, 곧 '일자'만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운동과 변화도 있을 수 없다. 허공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법 하지만 앞서 논변이 증명하듯 허공은 없다. 그렇다면 운동도 없다.
파르메니데스의 논증은 존재론이라는, 철학의 가장 중요한 분야를 낳았으며, 그 뒤 2,500여 년 동안
수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이 논증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것은, 세상의 참모습은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는 점이다.
( 이와 비슷한 개념이 요즘 심리학에서도 자주 인용되는데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면
코끼리가 무엇인지 일단 알아야 한다. 그러면 코가 길고, 귀가 크고 이러한 코끼리의 특징을
알아야만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이미 저러한
특징을 떠올리기 때문에 이미 코끼리를 생각하고 있게 된다. )
없음과 코리끼리 이야기는 다르긴 하지만 맥락이 비슷하다. 말장난 하는 느낌??
없음을 머리에 그릴 수 없는 것과 것과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으려는 것
"모든 것은 존재로 가득 차 있다."
"모든 것은 빛과 어둠으로 똑같이 가득 차 있다."
소크라테스
기원전 470년 ~ 기원전 399년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소포로 니코스는 석궁이었고 어머니 파이나 레테는
아이를 잘 받기로 유명한 산파였다. 아테네 시민으로 살아가려면 조리를 갖추어 설득력 있게 말하는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주목던 사람들이 '소피스트 Shphist'들이다.
소피스트는 변호사와 논술강사, 철학자를 합쳐놓은 듯한 직업이다.
이들은 재판에서 벌어지는 논쟁이나 연설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고,
때에 따라서는 법정에 직접 서기도 하면서 돈을 벌었다.
소크라테스는 세 명의 시민에게서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신을 믿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고소 당하여
500인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사실 고소한 이들이 소크 라테를 굳이 처벌하려고 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소크라테스가 접점에서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고소당했다는 사실에 놀라 가르침을 자제하길
원했다. 어리석은 아테네 사람들은 280 대 220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결국 사형을 받게 된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때의 과정을 제자
플라톤이 보고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쓴 책이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파이돈'이다.
소크라테스의 논 박술은 유명하다. 상대방에게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계속 질문해서
스스로 모순적인 말을 하고 있구나.라고 깨닫게 하는 방법이다.
"민중이란 무엇인가?"
"가난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필요한 만큼 돈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부자들도 늘 돈이 부족하다고 한탄한다. 그러면 부자도 가난한 사람인가?"
"이 점에서는 그렇겠지요"
"민주주의는 민중 중심 정치 제도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치제도인가,
부자를 위한 정치 제도인가?"
"모르겠습니다."
플라톤
기원전 427년 ~ 기원전 347년 아테네 최고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스무 살 되던 해 소크라테스를 만나게 된다.
수학 지식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 삼각형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한 정삼각형이 아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그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변의 길이나 각의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실제로
정삼각형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 정삼각형은 사람 손으로 그릴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정삼각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이 정삼각형에 대한 지식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이데아는 수학적 진리를 모든 사물에 확장시킨 것이다. 이데아는 객관적이고
불변하여 완전한 사물의 본질이다.
어떤 행동이 정의로운지 아닌지는 이익을 계산하거나 투표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행동이 정의로움의 이데아를 따르고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 옳고 그름이 결정된다.
국가는 유익함과 올바름의 이데아, 선의 이데아를 알고 있는 사람이 거기에 따라 통치할 때 정의로워진다.
올바름의 이데아를 알고 있는 철학자가 권력을 쥐고 통치할 때에만 비로소 사회는 정의로우며
이상 국가에 다다른다. 플라톤의 이런 생각을 '철인 통치론'이라 부른다. 적어도 사회 지도층만큼은
재산을 가져서는 안된다. 가족도 있어서 안된다. 재산은 공동 소유여야 한다.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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