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은 고대 켈트 족이 한 해의 마지막 날 치른 사윈 축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켈트인들은 일 년이 열 달로 이뤄진 달력을 사용했으며 한 해를 네 개의 기념일로 구분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한 해의 마지막과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10월 31일의 사윈 축제였습니다.
사윈 기간이 되면 켈트 족은 방목해 기르던 가축을 불러들이고 농작물을 거둬들이며 새해맞이 준비를 했습니다. 이날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내세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인간 세계를 찾는 날이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이때 열린 지하 세계의 문을 통해 악마와 마녀, 짓궂은 유령들도 함께 올라온다고 믿었습니다.
서기 60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선교사들에게 민간의 믿음과 풍습을 없애려 하지 말고 그리스도교 교리로 변환시키라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나무를 숭배한다면 그 나무를 잘라버리지 말고 예수의 이름으로 축성한 뒤 계속 모시게 하였습니다. 이 방식은 그리스도교가 퍼져나가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했고, 이후 가톨릭 선교의 방침이됐습니다. 토속 신앙에서 기념하던 축일들 역시 없애는 대신 그리스도교 축일로 대체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12월 25일에 지내는 크리스마스 입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원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전해지나 서구의 여러 민족이 지내던 동지 축제를 그리스도교의 축일로 받아들인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한편 하지 축제는 성 요한의 날로 흡수됐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 정책은 토속 신앙의 색채를 감소시키기는 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이승을 방문하는 죽은 영혼들의 평온을 빌고 악령을 물리친다는 사윈 축제의 상징성은 그 뿌리가 깊고 강력해 이를 흡수하고 대체할 다른 축일이 필요했습니다. 이전에 그리스도교는 만성절을 11월 1일 혹은 성령강림절 이후 첫 번째 일요일에 치러왔는데, 800년경 이것을 11월 1일로 고정시켰습니다. 사윈 축제는 자연스럽게 만성절 전날 치르는 행사가 됐으며 ‘할로윈’이라는 이름도 ‘만성절 전야’라는 의미의 ‘올 핼러우스 이브’(All Hallows’ Eve)가 변형되었습니다. 만성절이 사윈 축제를 흡수한 뒤에도 10월 31일의 행사는 끈질기게 이어졌고, 오랜 세월 사람들과 함께해온 고대 켈트의 문화는 현대의 옷을 입고 세계적인 축제 할로윈으로 되살아났습니다.
미국에서는 매년 가을 추수 감사의 의미를 지닌 축제를 벌이는 것이 일상화돼 있었고, 19세기 중반까지 할로윈은 유럽에서 이주해 온 이민자들이 특정 지역에서 지내는 소규모 행사였습니다. 18세기에는 미국으로 이주한 25만여 명의 스코틀랜드 ·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뉴 잉글랜드와 메릴랜드, 일부 남부 지역에서 할로윈 축제를 치렀는데, 이 무렵의 할로윈은 한 해의 수확을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하고 이웃과 함께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억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행운을 빌어주며 춤과 노래를 즐겼고, 여기에 유령 얘기나 짓궂은 장난이 일부 포함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1840년대 중반에서 1850년대 초에 걸쳐 아일랜드를 덮친 대기근으로 아일랜드 이민자 1백만 명이 미국으로 대거 유입됐고, 이들이 미국 사회에 정착하면서 할로윈 축제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생전에 악행을 많이 저질러 천국과 지옥 양쪽에서 거부당한 구두쇠 ‘잭’의 영혼이 들고 다녔다는 호박 등불 잭오랜턴(Jack-O’-Lantern)도 이때 함께 전파됐습니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는 원래 순무로 등불을 만드는 전통이 있었으나 미국에 건너와서는 순무보다 흔한 호박으로 대체 되었습니다.
한편 오늘날 할로윈의 대표적인 행사로, 아이들이 마녀나 요정, 유령, 인기 만화의 주인공 등으로 분장하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먹을거리를 얻는 놀이를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이라고 부릅니다. 이 명칭은 아이들이 외치는 “과자를 안 주면 장난칠 거야”(trick or treat)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고, 놀이 자체는 중세의 풍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의 할로윈은 일부 이민자들이 치르는 소규모 지역 축제였고, 1900년대 이전에 할로윈을 다룬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기록은 1911년의 것으로, 뉴욕 인근의 온타리오 주 킹스턴에서 발간한 신문에 ‘아이들이 저녁 6시부터 7시 사이에 가게와 이웃집을 다니면서 노래와 율동을 보여주고 견과류와 사탕을 얻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기록으로 1915년 지역이 밝혀지지 않은 신문 기사와 1920년의 시카고 지역 신문에 실린 기사가 있습니다. 1919년 문화사가 루스 에드너 켈리(Ruth Edna Kelley)가 발간한 책에서도 할로윈 축제를 다루고는 있으나 분장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다만 이 무렵부터 할로윈을 기념하는 엽서가 발행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아이들이 ‘트릭 오어 트릿’을 외치며 과자를 얻으러 다니는 현재와 같은 모습의 할로윈은 1930년대 이후 광범위하게 퍼져나갔습니다. 1934년 기사에 ‘트릭 오어 트릿’이 처음 언급됐고, 1930년대 말에는 이 풍습이 더욱 널리 알려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설탕을 배급제로 제한하면서 잠시 주춤했으나 전쟁이 끝난 뒤 어두운 사회 상황을 떨쳐내기 위해 축제에 열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할로윈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출저] [네이버 지식백과] 할로윈 [Halloween] (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다빈치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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