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식창고/인문학

그래도 지구는 돈다 피사의 갈릴레오

by 워니의서재 2018. 10. 19.

갈릴레오는 1564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지방의 피사에서 7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빈센초는 갈릴레이는 유명한 류트 연주가로, 음악이론

에 간해 중요한 연구를 일부 남겼습니다. 갈릴레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을 반박했고 교황청을 비롯한 종교계와 대립했습니다. 업적으로는 망원경을 

개량하여 관찰한것, 운동 법칙을 확립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지구가 

중심이라는 것이 진리였다고 합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옹호하여 

태양계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라고 믿던 때 였습니다.



11세에 수도원 학교에 입학하여 인문학을 배웠고,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 불만을 가졌습니다. 피사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던중, 진자의 

등시성을 발견하고 이것을 이용하여 맥박계를 고안하였습니다. 피사 대학을 

중퇴한 후 피렌체에서 가정교사를 하면서 수학연구를 계속하였습니다. 



1589년 피사 대학의 수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또한 높은 곳에서 무게가 각각 

다른 물체를 떨어뜨리는 실험을 하여 낙체의 속도가 무게에 비례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유명한 피사의 

사탑에서의 낙체 실험입니다.그러나. 이 실험은 실제로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과학 상식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갈릴레이의 전기작가 이자 

신봉자인 비비아니가 갈릴레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지어낸것 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반박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연구 성과에 대하여 많은 반대가 있었기 때문에 자진하여 로마 교황청을 

방문하여 변명했으나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지동설의 포기를 명령받았습니다. 

그러나 ‘황금 측량자’를 저술하고, ‘천문학 대화’를 검열을 받고 출판했으나 문제가 

생겨 로마에 감금되었다가 석방되었습니다. 결국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철회하도록 

강요받았고, 그의 마지막 생애를 로마교황청의 명령에 따라 가택에서 구류되었습니다.


[출저] 위키피디아 갈릴레오 갈릴레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