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사를 굉장히 쉽게 읽을 수 있다. 지금까지 읽어본 철학 책 중에 가장 쉽게 쓰여있는 것 같다.
아무리 쉽게 쓰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분야가 있다. 철학이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은 처음 읽는 초심자도
이해하려고 생각하면서 읽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구성되어 있다. 간략하게 철학자들의
삶을 소개하고 그 삶을 토대로 철학자가 왜 그러한 사상을 펼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배열되어
있다. 철학에 관심은 있는데 엄두가 안 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 도시국가 아테네가 지배하던 사모스섬에서 태어났다. 열여덞 살이 되었을 때
에피쿠로스는 최고의 교육 기회를 잡게 된다. 2년간 병역 의무를 지기 위해 교육의 도시 아테네로 가게
된다. 아테네에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메이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을 비롯하여 유명한 학교들이
많았다. 그 당시 에피쿠로스는 전쟁으로 인해 소아시아에 있는 콜로폰으로 이사해야 했다. 그곳에서
에피쿠로스는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다'는 데모크리토스의 사상에 깊이 빠져들었다.
도시국가의 몰락과 혼란을 몸으로 경험한 에피쿠로스는 더이상 정의.도덕과 같은 명분을 믿지 않았다.
죽음은 몸을 이루는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죽음은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는 우리에게 없다. 그러나 죽음이 찾아왔을 때는 이미 우리가
흩어지고 없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보통 쾌락주의자라고 불리운다.
에피쿠로스의 욕망을 세가지로 분류하면 필수적 욕망, 필수적이지 않은 욕망, 공허한 욕망으로 나뉜다.
첫번째 필수적 욕망
필수적 욕망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음식. 옷. 집 등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다.
두번째 필수적이지 않은 욕망
필수적이지 않은 욕망은 맛있는 음식, 좋은 옷, 쾌적한 집 등에 대한 욕망이다.
세번째 공허한 욕망
공허한 욕망은 명성이나 인기 같은 것들에 대한 욕망이다.
필수적이지 않은 욕망과 공허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쾌락을
주지 못한다. 채워질수록 기대 수준이 점점 더 높아져 결국 고통만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필수적인 욕망뿐이다. 많은 노력 없이도 얻을 수 있을뿐더러, 일단 채워지면 더 이상 고통을 낳지
않는다. 에피쿠로스는 필수적인 욕망에 철학과 우정에 대한 욕망도 넣었다. 철학을 함으로써 불필요한
욕망을 없애고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며 소박하게 산다면, 어떤 욕망에도 흔들리지 않고 고통도 없는
상태인 아타락시아ataraxia에 이를 수 있다.
◆ 아우구스티누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 누미디아(알제리 북부에 해당하는 북아프리카)에 있던 로마의 속지 타가스테
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장을 갖고 있으면서 관직을 맡고 의회에도 나가는 전형적인 중산층 로마인이었다.
마니교의 교리는 세상의 악과 고통에 대해 고민하던 열아홉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명확한 해석과 삶의
방향을 일러주었다. 그 뒤 그는 9년동안이나 마니교에 빠져 지냈다. 그러나 마니교는 그의 의문을
완전히 풀어 주지 못했다. 죄악이 악한 신으로부터 비롯된다면, 악한 짓을 한 사람에게는 책임을 물을수
없지 않을까? 그는 단지 신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와
의 만남으로 새로운 전환을 맞았다. 수사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의 탁월한 연설에 감동했다.
그는 암브로시우스를 통해 '성경'속에 숨은 진리를 깨닫게 된다. '성경' 신과 세계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쉽고 간단하게 풀어 쓴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암브로시우스에게서 그토록 고민하던 악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찾았다. '성경'에 따르면 하느님은 선하고 전능한 분이다. 이런 신이 만든 세상은 행복과 사랑이
가득한 곳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왜 고통과 절망과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가? 이문제를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은 없다. 단지 선의 결핍만 있을뿐' 이라는 한마디로 간단히 정리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는 항상 작은 선보다 큰 선을 택해야 하지만 우리는 오직 자신에게만 이익을
주거나 심지어 해로움을 안기는 작은 선을 택하는 때가 더 많다. 왜 그럴까?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이유를
성경에 나오는 원죄에서 찾았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최초로 저지른 죄로 말미암아 후손인 우리 인간들
은 그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작은 선을 택할 수밖에 없다.
◆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는 1225년 이탈리아 아퀴노 근교 로카세카 성에서 태어났다. 토마스가 열다섯 살때 더 깊이 공부
하기 위해 나폴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인생을 결정짓는 두 번의 만남을 겪게 된다. 하나는 만물 박사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를 만난것이고, 알베르투스는 그 당시 유럽에서 한창 인기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붐과
밀접한 인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쌍벽을 이루는 철학자지만 무려 천년이 넘는 동안 유럽사회에서
잊혀진 철학자였다. 그러나 아랍 세계에서는 굉장히 큰 인기를 끌었다. 아랍어로 쓰여있던 아리스토텔레스 사상
라틴어로 번역되어 다시 유럽의 수출되었다. 당시 유럽은 기독교 신앙이 지배하고 있었다.
신앙은 모든 논리적인 사고 위에 있었다. 신과 세계에 대해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따져 묻는
일은 신앙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지곤 했다. 나아가 세계는 죄악으로 가득 차 보잘것 없었다.
진정한 세상은 하늘나라였다.
토마스에 의하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따라서 국가는 인간에게 자연스럽다.
국가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얻기 위한 기준을 마련해준다. 인간에게 최고의 행복은 신을 믿는것이다.
이러한 행복은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신이 세상에 심어 놓은 자연법을 깨닫고, 선을 쫒고 악을 피하는
생활을 할때 비로소 얻을수 있다.
◆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는 1469년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법률 고문으로 활동했다.
마키아벨리가 아홉 살 때 메디치 가에 대한 구데타가 일어났고, 스물 여덞 살이 되던 해에는 사보나롤라라는
광신적인 수도사가 신정 정치를 세웠다. 다음 해에는 그 역시 사형을 당해 불에 탔다. 한눈 팔다가는 당장
내일을 장담하지 못하는 세상이었다.
인간이란 두려움을 주는 자 보다 사랑을 주는 자에게 해를 끼치는데 더 망설임 없는 사악한 존재다.
정치는 인간의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본능을 억제하는 강제 장치다.
군주론의 모델이 되었던 체사레 보르자는 냉혹한 사람이었다. 화해하자고 연회를 열고 반란자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뒤 몰살시켰다. 가장 아끼는 부하에게 누명을 씌워 죽여서 광장에 전시해 국민들의
동요를 가라 앉히기도 했다. 끔찍한 일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그에게, 마키아벨리는 혐오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탄성을 질렀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모든 일은 이성적인 대화만으로 해결할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일 뿐이다.
분명 폭력은 짐승에게나 어우릴 수단이다. 그러나 군주는 때때로 짐승이 되어야 한다. 사자의 힘과
여우의 간교함을 갖추어야 한다. 한번의 단호한 폭력으로 더 많은 폭력과 혼란을 잠재울 수 있다면
군주는 당연히 짐승의 수단을 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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