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은 철학은 왜 읽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었을 때의 짜릿함이 즐겁고, 지식이 쌓일수록 똑똑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기뻤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철학이라고 하면 멋있어 보였다고 합니다.
저도 인문학 책이나 교양과학 책 읽을 때 그런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이 문장에 크게 공감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철학이 멋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철학이라고 하면 실용성 없는 쓸데없는 학문 그리고 말장난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딱 그런 느낌이 바로 철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제가 철학을 얕은 지식으로 만 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 전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통해 정치에 관심이 생기고 정치와 관련된 팟캐스트를 이것저것 듣다가 '지대넓얕'이라는 팟캐스트를 알게 되면서 철학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도 철학 파트를 들어보면 굉장히 생소한 개념이라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과학백과사전이나 SF 소재를 다룬 영화 만화를 좋아해서 철학 이야기는 건너뛰고 주로 과학, 정치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존에 올라온 에피소드를 다 소비해서 더 들을 것이 없던 저는 철학을 한번 들어보자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필 처음 듣게 된 에피소드가 '프리드리히 니체'였습니다. 니체라는 글자가 '나체'로 보이던 저에게 니체의 '영원회귀'는 너무 충격적인 이론이었습니다. 정말 '망치 든 철학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저의 머리를 망치로 한대 얻어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철학을 좋아하게 되었고 팟캐스트만 듣던 저는 철학 책까지 읽게 되었고, 그 이후 심리학, 역사 등 책 읽는 습관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철학은 제 인생을 너무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책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가 누군이지 묻는 질문에 '스피노자'라고 답하지만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막상 하려고 하니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피노자가 무얼 이야기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질문에 저도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가 누군이지 물어보면 누구라고 대답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한 명만 꼽는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 명만 말하자면 '쇼펜하우어'를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철학도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쇼펜하우어가 살아온 인생 때문입니다.
쇼펜하우어가 어릴 때 온 가족이 초호화 유럽 여행을 떠납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프랑스 빈민의 비참한 모습, 장교에게 채찍질 당하며 행군하는 영국 병사, 항구마다 참혹한 강제노동을 당하는 흑인 노예들을 보면서 크게 충격받았지만 정작 부모님들은 이러한 광경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에서 실망하는 쇼펜하우어는 실망합니다.
그 이후로 철학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을 보고 싯다르타와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싯다르타는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려놓고 고행의 길을 걷는 반면에 '쇼펜하우어'는 의지가 약해서 자신이 누리고 있던 부모의 보살핌은 포기하지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완벽하지 않아 인간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쇼펜하우어와 거의 비슷하게 좋아하는 또 다른 철학자는 '비트겐슈타인'입니다. 책 속에 한 문장을 발췌하면
P228.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의미가 삶의 조건에 의해 규정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한 언어를 상상하는 것은 한 생활양식을 상상하는 것'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문장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이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인과 생활하는 문화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단 언어에 어순 다르기 때문에 사고하는 방식 자체도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리처드 니스벳 교수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심리구조가 같지 않다고 주장 합니다. 그는 수족관을 보여 주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조사하는 실험에서 서양인은 물고기를 구체적으로 기억한 반면에 동양인은 물고기 외의 수초나 기포, 달팽이 등과 같은 배경을 더 잘 기억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닭과 소, 풀 중 관련되는 것을 묶는 실험에서 서양인들과 다르게 동양인들은 소와 풀을엮는 결과가 많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 사례 말고도 미디어에서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영화 '컨택트'입니다. 거기서 등장하는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면 시간을 직선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원형으로 한눈에 사고합니다. 극중 등장하는 언어학자는 외계인 의 언어를 배우고 자신의 과거부터 미래에 자기가 죽는 순간까지의 모든 일을 볼수 있게 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가 생활양식까지 결정한다는 철학을 기본 전제로 스토리를 구축한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한참 상영 중인 '해피데스데이 2'에서는 니체의 영원회귀를 굉장히 잘 표현 하였습니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의 삶을 반복한다는 사상 입니다. 얼핏 보면 윤회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은 윤회는 죽어서 환생 후 다른 삶을 살지만 영원회귀는 다시 태어나서 지금과 살았던 똑같은 삶을 또 반복하는겁니다. 그래서 어차피 삶은 고통의 연속이고 반복된다면 너의 삶을 긍정하라는 뜻인데 이 사상을 정말 잘 와닿게 이해하고 싶다면 우선 책으로 사상을 접하고 철학이 담긴 미디어를 보면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느낌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철학을 좋아하는 이유와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가 말한 것과 같이 철학을 읽다 보면 질문을 하게 되고 사고력이 증진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어느 철학자가 이렇게 말했다를 외우기보다 그 철학자가 말한 사상을 여기저기 대입해보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철학이나 심리학을 대입해서 생각해보고 미디어를 볼 때도 철학을 대입하여 생각하기 때문에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볼 때도 더욱 재미있게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그림과 함께 쉽게 설명 되어 있어서 입문자가 읽기에 상당히 매력 있는 책입니다. 이미 철학을 여러 번 접한 사람은 복습하는 개념으로 그림과 함께 가볍게 읽기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 작가의 후기에서 "책을 사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독서니까"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스타일의 유행을 만드는 이유는 남은 원단의 재고 처리를 위해서 유행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많은 작가와 문학평론가들이 책은 사놓고 그중에서 골라 읽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책이 많이 팔리면 자신들도 좋으니까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볼 수 있습니다만 그래도 책을 사고 싶은 욕망을 명분으로 승화시켜줍니다. 책을 산다고 구박하는 가족들에게 "저거 봐 책은 사놓고 읽는 거라 자나!" 라고 말할 수 있는 명분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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