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는 가장 위대한 중세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사실 토마스 아퀴나스를 떠올리면 신학자 이자 철학자이다.
다섯살 어린나이로 몬케카시노의 베네딕트 대수도원에 의탁된
그는 20세에 도미니코 회의 정식수도자가 되었다.
이후 1274년 49세 젊은 나이로 임종하기 전까지
오직 평수사로서 학문적 추구에만 몰두했다.
서구 유럽 사회의 13세기는 십자군 전쟁이 지속되던 시대였다.
1291년 루이 9세의 안티오키 탈환 원정중에 사망하고
시리아의 요새들도 잇따라 빼앗기다가 결국 아콘을 상실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최종패배로 종교전쟁의 막을 내렸다.
이후 교황권의 쇠퇴와 세속화가 가속화되고
정교가 급속도로 분리되었다.
이슬람 철학자들로 부터 도입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초기에는 이교도 사상으로 낙인 찍혔지만,
중기에는 금서목록에 들어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이
공공연히 연구되고 강의 되었다.
13세기 초기에 혜성처럼 나타난 두개의 탁발수도회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와도미니크 수도회였다.
유럽의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게 될 이 두 수도회의
탄생동기는 아이러니하게 가장 비극적인 사건 십자군 전쟁에 있다.
프란체스코 성인 과 도미니크 성인은
모두 십자군 전쟁의 비참한 상황을
생생히 목격하였다.
프란체스코 성인은 미래가 보장된 안락한 환경에 있었지만,
그는 십자군 전쟁에 출전하여 전쟁터에서
잔인하고 악마적인 인간의 행위를 보면서
'무엇이 영혼의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 줄것인가'
를 고민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것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가 자연의 생명들과 친화적으로 지내며,
버림받은 숲속의 문둥병자들을 돌보며 평생을 보낸다.
이러한 박애의 정신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모여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탄생하게 된다.
좀더 늦게 출발한 도미니크 수도회는
스페인의 한 성당의 사무장이었던
도미니크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당시 로마의 교황청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여 하기 위해
떠나는 본당신부를 보좌하여 여행길에 나선 그는,
프랑스 남부지방을 가로질러 여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십자군 전쟁에 의해 페허가 된 삶의 터전에서
비참하게 살고있는 평민들을 한달동안 목격하게 된다.
경작지가 파괴되고 윤리와 도덕이 파괴된
삶의 터전은 가히 지옥을 방불케 하였다고 한다.
사무장 도미니크는 그들을 인간답게
그리스도인답게 살수 있도록 하는데
남은 인생을 바치리라 결심하게 된다.
그는 교황에게 지원을 약속받고 돌아오는 길에
프랑스의 한 남부 지방에서 작은 구호소를 마련한 그는,
집과 부모를 잃고 경작지를 잃어버린 이들을 구호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가장 근본적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교육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올바른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지게 하는것'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것'만이
그들을 지옥과 같은 비참함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출저] 토마스 아퀴나스 진리론 책세상 문고.고전의 세계
이명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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