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경전 <코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무슬림의 신과 기독교의 신은 같은 한 분의 신이시니, 우리는 그분께 순종함이라.
두 종교의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의 아들로 보느냐, 단순한 선지자 가운데 하나로 보느냐 하는 차이외엔 거의 비슷하다. 무슬림은 기독교를 '성서의 백성'이라 부르며 존중했다. 교리로만 보면 형제나 다름없는데 1000년 가까이 전쟁을 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그 당시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종교를 이용한 탓이 크다.
콘스탄티노플(터키 이스탄불)을 수도로 했던 비잔티제국(동로마)제국은 기독교 세계의 동쪽 끝에 위치한 나라였다. 그런데 중앙아시아에서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이슬람 종교로 개종한 셀주크 투르크족이 11세기부터 빠르게 성장하여 급기야 비잔티 제국까지 위험에 처하고, 절박해진 황제 알렉시오스 1세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 도움을 청했다.
알렉시오스 1세는 '기독교 세계의 위기'를 앞세웠다. 이교도의 침략 때문에 기독교 국가인 비잔틴이 위기에 놓여 있으니, 같은 종교를 믿는 나라들이 나서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교도 무슬림이 성지 예루살렘을 지배하면서 기독교들이 얼마나 박해받고 있는지를 과장하여 구구절절 나열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무슬림의 손에 넘어간지 이미 400년 이상 되었을 뿐 아니라, 무슬림은 기독교들이 성지순례 하는 것을 막거나 방해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유럽의 골칫거리였던 전투 집단을 '신을 위해 싸운다'는 고결한 명목 아래 동쪽으로 쓸어내는 데는 좋은 명분이 되었다. 당시 유럽에는 잦은 전쟁으로 기사들이 넘쳤났는데, 이들은 툭하면 폭력을 휘둘러 사회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그 당시 기사는 지금의 '조직 폭력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십자군 전쟁은 교황에게 자신의 권위를 확실히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슬람과의 전쟁은 왕과 영주의 힘을 빼앗고 교황권을 강화하기 위한 절호의 찬스였다.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는 성지 회복을 위한 무장 순례를 정식으로 승인했다. 이때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자신 있게 선언했다.
"성 베드로의 군대는 소아시에서 셀주크 투르크를 쓸어 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땅을 해방시킬 것이다. 유럽 곳곳에서 1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약을 하고 옷에 십자가를 달았다. 전쟁에 참여해서 승리하고 돌아오면 죄를 사해준다는 말에 귀족, 기사, 농민 할 것 없이 십자군에 몸을 바쳤다.
엄청난 수의 병사와 무기가 이동할 때는 보급이 확실히 뒤따라야 하는데 십자군은 보급에는 관심도 없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신께서 알아서 식량과 물품을 주실 텐데 무슨 걱정이 필요한가 안일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여정중 도착하는 마을마다 "여기가 예루살렘이냐?"라고 물을 정도로 지리적인 지식도 없었다.
결국 음식이나 보급품이 떨어지면 일상적으로 약탈을 했는데, 그 대상은 기독교를 불쌍한 민간인들이었다. 십자군은 무슬림과 싸우기도 전에 먼저 기독교들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십자군은 유대인을 자주 학살하곤 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고리대금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빛을 진 사람들은 채무를 덜기 위해, 군주들은 재산을 가로챌 목적으로 유대인들을 죽였다. 제1차 십자군은 1099년 마침내 예루살렘을 빼앗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90여 년 동안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하게 된다.
십자군 제1차 원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이슬람 세계의 분열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도 기독교에 대항하여 성전, 지하드를 펼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분열되어 있던 사람들을 세력으로 키워나간 사람이 그 유명한 살라딘이다. 살라딘은 결국 예루살렘을 재탈환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힘겨운 전투가 계속되자 전쟁보다는 협상을 통해 성에 있던 사람들을 안전하게 고향으로 갈 수 있게 약속한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것은 제4차 십자군 원정 때는 이슬람을 공격하지 않고 엉뚱하게 같은 기독교 국가 비잔틴제국을 공격해 멸망시키기 직전까지 간다. 공격한 원인은 역시 돈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많은 유럽 인들은 비잔틴 제국이 로마 카톨릭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 정교회를 믿고 있었다는 이유로 십자군에게 갈채를 보냈다. 결국 1291년 팔레스타인 지역 아크레가 함락되면서 십자군은 모두 사라졌다. 이후 교황권은 약화되고 왕권이 강화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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