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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창고/인문학

해외 다큐멘터리 부의탄생 리뷰 석유왕 록펠러

by 워니의서재 2018. 10. 11.


클리브랜드의 가난한 가정에서 록펠러는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기업가의 자질이 있었다.

동네 아이들에게 사탕을 팔아서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록펠러의 아버지는 사기꾼이다.

가족의 생활비를 주지 않고 몇 달씩 사라지곤 했다.



록펠러는 석유가 세상을 변화시킬 것을 미리 알아봤다.

석유 생산과정을 알아보면 너무 낭비적이라 생각했다.

처음 유정 시추를 하면 마른 걸 발견한다.

또 시추하고 분출 유정을 터뜨려도

기름의 절반은 버려진다.

록펠러는 그러한 문제점의 개선책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유는 땅속의 원유를 램프에 사용할 깨끗한 연료 또는

등유로 만드는 일이다.

록펠러는 기술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도박자는 시추에 집중하고 사업가는 정제에 집중한다.

정유 공정을 지배하면 정유업 전반을 가질 수 있다.


25세 때 전 재산 4천 달러를 첫 번째 정유공장을 짓는데 투자했다.

정유산업의 핵심을 찾으며 고군분투하던 중에

가장 힘 있는 사업가와의 만남으로 사업의 양상이 변한다.

밴더빌트의 낮은 운송료 계약은

석유 시장의 길목을 잡는 기회가 된다.

하루 60배럴 계약은 그의 공장 용량을 초과한 약속이다.

록펠러는 회사를 빨리 확장해야 했다.

그래서 투자자가 필요한데 문제는 등유의 안 좋은 인식이었다.

가정의 연료 폭발이나 화재 소식이 전국의 신문 1면을 채우니

잠재적 투자자는 등유에 회의적이었다.



수요가 높자 많은 생산자가 위험한 등유로 시장에 뛰어든다.

그들 제품은 너무 휘발성이 강하다.

록펠러는 이 문제를 기회로 보았다.

믿을만한 제품으로 대중의 공포를 잠재우면 된다.

록펠러는 자기 회사명을 '스탠다드 오일'라고 지었다.

나는 표준을 만든다는 의미였다.

록펠러의 '스탠다드 오일'회사는 공포를 잠재우고

누구나 찾는 석유가 되었다. 투자자가 줄을 이었다.

밴더빌트와의 독점계약으로 전국의 가정마다 

매우 싼값에 제품을 공급했다.

록펠러의 오일 생산량은

한때 밴더빌트의 기차를 못 채웠지만

이제는 다 채우고도 남는다.

이 사실을 밴더빌트의 경쟁자가 알아보았다.

탐스캇은 다른 큰 철도의 사장이다.

철도왕 밴더빌트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다.

철도왕 자리의 열쇠는 록펠러라고 생각했다.

탐 스캇은 그의 제자, 젊은 유망주

앤드류 카네기와 클리브랜드로 향했다.



록펠러는 밴더빌트와 한 계약조건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탐 스캇과 계약했다.

밴더빌트는 경쟁력의 핵심을 잃었다.

석유회사는 철도회사가 놓칠 수 없는 품목이었다.

록펠러는 석유가 없으면 철도는 생존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록펠러의 석유는 철도화물의 40%를 차지했다.

철도회사들을 서로 경쟁시키면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제 록펠러는 경쟁사를 사들이기 시작한다.

전국의 정유사를 모두 사버렸다. 

오늘날의 독점이다.

독점을 완성했을 때 북미 석유 공급의 90%를 통제했다.

스탠다드 오일은 미국 최초의 독점 기업이 되었다.

33세 때 록펠러는 미국의 가장 힘 있는 인물이 되었다.

밴더빌트는 괴물을 만든 셈이다.

록펠러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철도회사가 뭉치는 것이다.

가장 큰 적  스캇과 동맹을 맺는다. 

밴더빌트가 탐 스캇과 담합으로 운송료를 올리려고 하자

록펠러는 선전포고로 간주한다.



록펠러는 기름을 운송할 다른 길을 찾기로 한다.

록펠러의 해결책은 의외의 장소에서 나왔다.

공장에서 기름은 큰 파이프를 통해 이동된다.

파이프로 단거리 수 송이 가능하다면

장거리 수송도 가능할 거라고 록펠러는 깨닫는다.

파이프라인은 거대한 투자와 막대한 위험 감수가 따른다.



파이프라인이 완성됐을 때 4천 마일(6400km)이넘었고,

오하이오 주와 펜실베니아 주를 가로질러

록펠러의 정유공장으로 직접 연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름 수송의 새 길을 만들었다.



록펠러의 운송될 석유 물량이 빠지자

주가는 급락하고 투자자는 공포에 빠진다.

미국의 1/3인 360개 철도 회사가 파산한다.

완전 붕괴를 막을 방법도 모른 채

주식거래는 정지되고 10일 연속 문을 닫는다.



1873년 공황상태는 최초의 전격적 경기 침체를촉발하였다.

아무도 대책을 알 수 없었다.

최초로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지만

기업가는 이전에 살던 대로 아주 잘 살았다.



많은 큰 회사가 생존 투쟁을 하고 있을 때 록펠러는 기회를 찾는다.

경쟁자가 무너지자 헐값에 파산한 기름 회사를 사들인다.

경기 침체의 정점에서 밴더빌트는 82세 때 죽었다.

1억 달러의 가치 회사를 아들 윌리엄에게 상속했다.

록펠러는 밴더빌트가 없는 회사를 아들이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아있는 록펠러의 경쟁자 탐 스캇과그의 제자 앤드류 카네기는

아직 싸우길 포기하지 않았다.

탐 스캇 열차는 록펠러의 피츠버그 정제수를오간다.

스탠다드 석유의 파이프라인이 없는 곳이다.

탐 스캇은 이 지렛대가 록펠러를 이길 총탄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록펠러는 기름 한 방울도 펜실베니아를 거치지 않게 하겠다고 한다. 

피츠버그 정제수를 폐쇄해버린다.

록펠러의 화물이 없어지자 거의 절반의 사업을 잃고

노동자 수만 명을 내쫓고 많은 임금을 삭감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거리에서 저항했다.


피츠버그에 어둠이 깔리자 노동자들은 폭력적으로 돌변한다.

탐 스캇 철도차량기지의 불을 지른다.

밤이 끝나기 전에 39동이 넘는 건물과

1200대 이상의 열차가 파괴됐다.

탐스 캇 회사는 폐허가 되었다.



펠러는 밴더빌트를 제치고 미국 최대의 부자가 되었다.

순자산 1억 5천만 달러

오늘날의 2250억 달러에 해당한다.

( 한화 250조 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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