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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뷰

해외다큐멘터리 부의탄생 철강왕 카네기2

by 워니의서재 2018. 10. 29.

1600채의 집이 파괴되고 시신이 많이 훼손되어 3분의 1은 신원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사우스 포크 낚시

수렵 클럽 회원들을 비난했다. 그러나 회원들은 부인했다. 주민들이 소송을 걸었지만 프릭과 회원들은 소송에서 승리

하여 교묘히 빠져나갔다. 그러나 다른 회원들과 달리 카네기는 이 재난의 책임을 느꼈다. 클럽을 그만두고 실추된 자신의 이미지 쇄신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카네기는 존스타운 재건사업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였다. 카네기는 '전국에

공공 기념물을 짓기 시작했다. 카네기홀은 뉴욕 예술 공연과 상류사회 사교의 장이다.




개관일 밤 러시아의 작곡가 표트르 차이코프스키가 특별 공연을 했다. 공연장에서 카네기의 칭찬은 자자했다.

그가 세운 공공 기념물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록펠러의 존재감은 더욱 컸다. 록펠러는 카네기의 3배 이상

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립관계는 새 국면에 들어섰다. 두 사람은 이후 10년간 성탄절 선물로 대결하였다.
록펠러는 싸구려 종이 조끼를 보냈다. 가난한 이민자 출신이라고 비꼬았다. 답례로 카네기는 독실한 침례교인 록펠러

에게 마실 수 없는 좋은 위스키 한 병을 보냈다. 미국 최고의 부자 록펠러의 부를 추월하려면 단지 철강업계 수익으로

부족했다.



더 많은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카네기는 홈스테드에 공장을 짓고 계속해서 비용을 절감 시켰다. 임금 삭감을 하면서 
자신의 체면도 지키려고 했다. 노동 분쟁에서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고용 회장에게 의지하기로 한다. 헨리 프릭은 

다른 사람의 인생은 관심 없다. 프릭은 악역이 되어도 무조건 이익만 내면 되는 사람이다. 그러나 카네기는 악역이

되고 싶지 않았다. 헨리 프릭만 남겨두고 카네기는 스코틀랜드로 떠난다. 프릭은 홈스테드의 노동자를 쥐어짜기

시작한다. 프릭은 공장 운영 효율화의 유일한 방법은 일 12시간, 주 6일 근무라고 생각했다. 견디기 힘든 노동조건이다.

이 당시에 노동법이 없었다. 그래서 제철소 노동자들의 작은 그룹이 단합하여 문제를 제기하려 한다. 그러나 프릭은 

생산량을 늘이고 노동자를 그 어느 때보다 밀어붙였다.


파업에 대비해 그는 완성된 철강을 비축해두었다. 노동자들은 인생 절반을 끔찍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보냈다. 

공장 내의 사고가 계속 증가한다. 노동자 중 한 명이 사망하고 그 죽음은 격앙된 전 노동자들을 결속시키는 힘이 되었다. 

프릭은 사태를 직감한다. 카네기에게 더욱더 압박해야겠다고 승인을 받는다. 프릭은 첫 번째 계획을 실행한다.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협상하지 않을 것이며, 노동조건 개선도 없다는 공고문을 붙인다. 2000명의 철강 노동자가 

공장 앞을 봉쇄했다.  프릭의 대체인력 투입을 저지하려 했다.


수년간 핑커튼 탐정단은 민간 보안회사로서 열차 강도 추적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링컨 대통령 암살 음모를 저지시키고, 대통령 개인 경호실 역할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군대의 규모로 성장했다.  미군보다 더 많은 총과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한다. 그러나 프릭은 돈이 많았다. 

프릭은 총과 많은 병력으로 겁만 주면 노동자들은 해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큰 오산이었다. 노동자들은 저지하러 온 보안요원에게 돌은 던지며 저항하였다. 결국 보안요원들을 총을

발사 하고 말았다. 시위가 끝나고 9명의 노동자가 죽어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그들은 

겨우 공장을 지켜냈다. 펜실베이니아주 주지사는 마침내 질서 회복을 위해 주 예비군을 보냈다. 대중들은 분노했고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그리고 카네기는 스코틀랜드 체류를 연장했지만 미국 기자들은 끈질기게 그를 쫓아다녔다.




대중의 분노가 잠잠해질 때쯤 무정부주의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불의를 참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홈스테드 대학살
로 관심을 돌렸다. 목표는 카네기 철강 회장이었다. 무정부주의자들은 프릭을 암살하려고 시도하지만 실패로 끝났다. 
프릭은 목에 총을 맞아 중상을 입었다. 프릭은 12시간 일하는 것도 나고, 총을 맞은 것 또한 나라서 자신이 일인자 자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카네기는 헨리 프릭이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카네기와 프릭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었다.


카네기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카네기는 피츠버그 신문기자들에게 은밀히 말했다. 내가 있었더라면
상황은 전혀 달랐을 거라고 유혈사태는 없었을 거라고 나는 노동자를 존중한다고 했다. 프릭은 그 어떤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카네기가 여론의 비난을 자신에게 덮어 씌운 것에 화가 난 프릭은 카네기 몰래 적대적 인수를
시도했다. 카네기 철강회사는 내부로부터 붕괴되고 있었다. 그러나 내부 문제 외에도 새로운 도전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은행가 JP모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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