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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었던 문장

릴케 시집 라이너 마리아 릴케, 송영택

by 워니의서재 2019. 7. 9.

저녁

변두리의 마지막 집 뒤로

쓸슬하게 빨간 저녁 해가 진다.

장중한 시의 끝맺이를 외며

낮의 환호성이 그친다.

 

그 잔광은 늦게까지도

지붕 모서리에 여기저기 남으려 한다,

 

어느새 검푸른 먼 하늘에

밤이 다이아몬드를 뿌릴 때,

 

밤에

오느새 프라하의 하늘 높이

밤이 커다랗게 피어 있다,

꽃받침같이.

나비 같은 햇살은 그 휘황한 빛을

꽃으로 핀 밤의 서늘한 품에 감추었다.

 

교활한 난쟁이, 달은 높이 솟아서

히죽거리다가

송이 모양이 된

밝은 은빛 부스러기를

지분지분 몰다우강에 뿌린다.

 

그러다가 갑자기, 감정이 상한듯이

빛을 불러들이고 말았다.

그의 경쟁자를

탑시계의 환한 문자판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겨울 아침

폭포가 꽁꽁 얼어붙었다.

연못 물가에 까마귀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은 귀가 빨갛다.

그녀는 무슨 재미있는 장난을 궁리하고 있다.

 

태양이 우리를 가볍게 쓰다듬는다.

꿈과같이

단조의 음향 하나가 나뭇가지 사이를 떠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온 숨구멍이

아침 기력의 좋은 향기로 가득차서.

 

해넘이의 마지막 인사

거룩한 태양이 녹아들고 있었다,

하얀 바다 속으로 뜨겁게

바닷가에 수도사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금발의 젊은이와 백발의 늙은이가.

 

늙은이는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나도 쉬게 되리라, 이렇게 편안히

젊은이도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죽을 때도 영광의 광채가 내리기를.

 

은빛으로 밝은

은빛으로 밝은, 눈이 쌓인 밤의 품에 널찍이 누워

모든 것은 졸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만이

누군가의 영혼의 고독 속에 잠 깨어 있을 뿐.

 

너는 묻는다, 영혼은 왜 말이 없느냐고

왜 밤의 품속으로 슬픔을 부어넣지 않느냐고

그러나 영혼을 알고 있다,

슬픔이 그에게 사라지면

별들이 모두 빛을 잃고 마는 것을.

 

https://ridibooks.com/v2/Detail?id=998000218&_s=instant&_q=%EB%A6%B4%EC%BC%80

 

릴케 시집

아름다운 명화와 함께 감상하는 릴케의 시이번에 문예출판사에서는 이런 릴케의 시적 창작의 흐름을 엿볼 수 있도록 릴케의 시대별 시집 네 권을 하나로 묶어 《릴케 시집》으로 출간했다. 《릴케 시집》에는 동경과 환상, 불안, 꿈과 순수한 사랑을 소박하게 그리고 있는 《첫 시집》과 소녀를 주제로 해 섬세한 직관과 깊은 이해력을 보여준 《초기 시집》, 초월적인 존재...

ridiboo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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