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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철학심리학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서평

by 워니의서재 2018. 11. 15.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합니다. 삶은 잠재력을 키우고 확장시키고 표현하는 내재적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삶이 방해를 받거나 개인이 고립되어 회의나 고독감과 무력감에 짓눌리면, 그때 개인은 파괴성을 드러내거나 권력에 대한 욕심을 부립니다. 심지어 권력자에게 복종하고 싶은 충동까지 생깁니다. 자유는 한편으로는 외적 권위로부터 벗어나 차츰 독립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점점 고립되어 결국 자신을 하찮고 무력한 존재로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세에는 모든 사람이 사회 체제 안에서 자신의 역활에 묶여있었다. 사회적으로도 어떤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고, 지리적으로도 어떤 도시나 나라에서 다른 도시나 나라로 이동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개인의 사생활과 경제생활 및 사회생활은 규칙과 의무를 지배 받았으며, 그런 지배를 받지않는 활동 영역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근대적인 의미에서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혼자 고립되어 있지도 않았어요. 태어났을 때부터 바꿀 수도 없고 의심할 여지도 없는 확실한 자리를 사회에 갖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구조화된 전체에 뿌리를 박았고, 따라서 삶은 의심할 여지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지요. 사회 체제는 자연적 질서로 여겨졌고, 그 체제의 확실한 일부가 되는 것은 안전감과 소속감을 주었습니다.

 

 

허나 근대로 넘어오면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는 사실을 어느순간 우리는 잊고 있습니다. 어떤 사회에서나 문화 전반의 정신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의 정신입니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이런 집단이 교육제도와 학교, 교회, 언론, 극장을 지배하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사상으로 인구 전체를 가득 채울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층계급은 그들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모방하면서 심리적으로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려고 합니다.

 

 

사회에 잘 적응한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사람이 인간적 가치라는 면에서는 신경증적인 사람보다 덜 건강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에 잘 적응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아를 포기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기 때문이지요. 진정한 개성과 자연스러움은 모두 사라졌을 것입니다. 반면에 신경증적인 사람은 자아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완전히 굴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으로 그 특징을 묘사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 잘 적응한다는 것은 남들이 기대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면 됩니다. 본래의 내 욕망을 통제하고 부모님이나 배우자가 또는 회사에서나 학교에서 나를 바라볼때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사회에 적응을 잘한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결국 사회적응 잘한다는 말은 자기 자아를 포기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으며,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춰나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신경증적'은 인격의 성장 과정에서 심각한 손상을 입고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사회적 기능의 결핍을 말합니다. 때문에 사회가 신경증적이라고 말하기보다는 행복과 자기실현에 불리한 사회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고 합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피학적 충동'은 열등감과 무력감 그리고 허무감입니다. 의식적으로는 이런 감정을 불평하고 그것을 없애고 싶어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그들의 내면에 있는 어떤 힘이 열등감이나 허무감을 느끼도록 그들을 몰아붙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가학적인 사람조차 자유롭지 못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가학적인 사람은 지배할 대상이 필요하고, 자기가 강하다는 느낌은 누군가를 지배한다는 사실에 뿌리를 두기 때문에 지배할 대상이 전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가학적인 사람은 이 의존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지배하는대에만 의미를 두기 때문입니다. 지배한 대상이 없어지고 나서야 무력감과 허무감을 느끼고 또 다른 지배대상을 찾게 됩니다.

 

 

예를들면 남편이 아내를 몹시 가학적으로 대하면서 언제든지 집을 나가도 좋다고, 당신이 집을 나가면 나는 무척 기쁠 거라고 말한후 아내가 정말 집을 나가게 되면 남편은 절망에 빠지고 비탄에 잠겨 제발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아내에게 애원할 것이고, 너 없이는 살수 없 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다시 아내는 결심을 바꾸고 남편 곁에 남게되면 문제는 남편은 전과 똑같은 행동을 다시 되풀이하게 됩니다. 아직도 가정폭력이 있는 가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결론은 '피학적 충동'과 '가학적 충동'은 둘 다 개인이 견딜 수 없는 고독감과 허무감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럼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해결책은 없는 걸까요? 에리히 프롬은 자유라는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는 것중 하나는 자발적인 활동을 하면서 인간이 본래 모습을 희생 하지 않고 고독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창조적 활동을 통해 대상과 진정한 관계를 맺어야만 그것은 사람이건 무생물이건 비로소 우리 것이 된다고 합니다.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거나, 진정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면 타인과 자신에게 가짜 자아를 보여줄 수 밖에없다고 합니다. 그 결과는 열등감과 무력감의 근원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에리히 프롬은 '평등'의 개념은 모든 인간이 똑같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자유와 행복을 누릴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지기위해서는 인간관계가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아닌 연대를 통해 바꿔나갈수 있다고 합니다. 또 교육을 통해서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능력, 감정적 경험과 감각적 경험을 구별하는 능력을 키우고 개발해야만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하고싶은 욕구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많은 책들이 결국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교육입니다. 허나 대한민국 사회의 교육은 굉장히 뒤쳐져 있죠. 100년전 프랑스 교육과 비교해봐도 굉장히 비슷합니다. 이를 바꿔나가려면 주입식 교육이 아닌 스스로 사고해서 행동할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대학 논문도 교수에게 잘보이기 위한 논문이 아닌 정말 자신의 생각을 쓰고, 그 생각이 정말 괜찮은 생각이라면 점수를 많이주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사회가 변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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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

<소유냐, 존재냐>, <사랑의 기술> 등을 통해, 수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철학자이자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주저가 번역가 김석희의 정확하고 유려한 번역으로 새로 태어났다. 그동안 몇몇 번역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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