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식창고/인문학

그림자 정부 로스차일드 가문 이야기

by 워니의서재 2018. 10. 12.


로스차일드 가문의 시조 M. A. 로스차일드는

174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대대로 엽전 등의 물품을 취급하는 골동품상 겸 고물상이었다.

그 당시 프랑크푸르트는 유대인만 살도록 되어 있는 빈민촌 게토가 있었다.

그 지역에 무려 3천 명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이란 이유로 특별 세금을 내야 했고,

노란색 유대인 표식을 달고 다녀야 했다.

또한 프랑크푸르트의 다른 지역을 지나갈 때

톨게이트 지나듯이 돈을 내야 했다.

M. A. 로스차일드의 아버지는 이러한 게토 

지역에서 가게를 하고 있었다.



그 가게에는 붉은 바탕에 사자와 유니콘이 그려진

방패 모양의 간판이 달려 있었고, 가게 이름도

'붉은 방패'였다. 이것이 후에 그의 성

로스차일드가 된 것이다.




M. A. 로스차일드는 10세 때부터 부모가 시키는

유대교의 라비 양성 학교에 들어가 공부했다.

20세가 채 되기 전에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었다.

그 후 친척의 도움을 받아 하노버에 있는

'오펜하이머'란 유대계 은행에 취직해서

평생 은행원으로 편안한 생활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은행을 그만두고 고향인 프랑크푸르트로

되돌아와서 아버지가 하던 고물 장사를 동생들과 함께 운영했다.

그는 골동품 이외에 다른 나라의 돈과 동전도 사다가 팔았으며,

취미를 겸해 옛날 훈장을 사들여 광을 내고장식한 다음 귀족들에게

골동품이나 기념품으로 판매했다.




그런 과정에서 귀족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당시의 독일은 여러 개의 작은 독립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 프랑크푸르트 지역의 황태자 빌헬름의 20명 이상의

자녀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화려한 생활을 즐기는

사채꾼들이었다. M. A. 로스차일드는 언젠가 왕이 될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면 자신에게 이익이 되리란 점을 간파했다.

그는 이러한 판단을 실천에 옮겼다.

M. A. 로스차일드는 빌헬름 황태자로부터 특별 허가를 얻어

자기 가게에서 세금을 걷는 대행업을 하는 동시에

소규모의 금융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독일 사회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부자 행세를

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




얼마 후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휩쓸기 시작해,

1806년에는 빌헬름 9세의 작은 공화국 '허세하나 우'마저 점령해버렸다.

빌헬름 9세는 처가인 덴마크로 피신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부데루스라는 재무관에게 돈을 맡겼다.

브루 데스는 막대한 돈을 벨헤름9세가 필요로 할 때마다

돌려준다는 조건으로 M. A. 로스차일드의 은행에 맡겼다.

이때부터 로스차일드는 세계의 금융가로 행세하게 되었다.


 M. A. 로스차일드의 아들들


첫째 아들 아라 셸은 독일에서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았다가

나중에 통일 독일의 재무 장관이 되었다.




둘째 아들 살로몬은 오스트리아,

셋째 아들 나탄은 영국,

넷째 아들 칼만은 이탈리아,

다섯째 아들 야콥은 프랑스로 가서 각각

그 나라에서 귀족이 되거나 경제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있는 형제들과 서로 연락을 취해

공동으로 돈을 벌기도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다국적 금융 기관이 된 셈이다.

프랑스에 간 야콥의 자손 제임스 로스차일드의 1850년도

자산 규모는 6억 프랑으로, 이는 나머지 전 프랑스 은행의

자산을 모두 합한 것보다 1억 5천만 프랑이나 더 큰 액수였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막대한 금력을 이용하여 그 나라의 통치자로부터

검열 없이 국경을 드나들 수 있는 특권을 얻기도 했다.

심지어는 적국에까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특별한 신분의 소유자가 되었다.


또한 그들은 통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비밀리에 비둘기를 이용한 통신 방법을 발전시켰다.


이 방법은 고대 로마제국 시절부터 이용되어 온 방법이었으나

그 무렵에는 거의 잊혀진 방법이었다.

유럽 각 나라에 분산되어 있는 형제들 간에긴밀한

연락을 취하기 위해 훈련된 비둘기를 사용하였다.

21세의 젊은 나이로 1798년 영국에 건너간 셋째 아들

나탄은 동인도 회사를 통해 그 돈으로 많은 금을 사들였다.

그리고 나폴리에 롱 1세와 전쟁 중이던 웰링턴 공작에게도

군비로 빌려주었다. 반면 프랑스에 간 나탄의 동생

야콥은 아버지가 보내준 돈을 나폴레옹에게 군비로 빌려주었다.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과 웰링턴의 결전을 지켜보게 되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나폴레옹의 위력이 너무 막강해서

영국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이 승리하는 것을 지켜본

M. A. 로스차일드의 사자는 그 길로 비둘기를 보내

영국에 있던 나탄에게 보고했다.


그 소식을 접한 나탄은 즉시 런던의 주식 시장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타나 비장한 표정으로

"팔아라"라고 외치고는 사라졌다.




그를 주시하던 사람들은 모두

나 타이 팔라고 할 때에는 분명 영국이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하고 너도나도 앞다투어

주식을 팔려고 했다. 

그 결과 주식가격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탄은 미리 비밀리에 조직해 놓은 다른 회상의 명의로

그 주식들을 몽땅 사들였다.

다음날 웰링턴이 보낸 사자가 승전 소식을 알리자,

영국 전체는 국민들의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주식 가격이 하늘로 치솟듯 올랐다.

나탄은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었다.



[출저] 그림자 정부 (세계 경제를 조종하는, 경제편) 이리유카바 최 (지은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