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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철학심리학

철학자와 하녀 서평 저자 고병권

by 워니의서재 2019. 6. 20.

 

이 책의 시작은 "왜 우리가 지금 여기서 철학을 공부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안양 교도소에서 철학을 강의하던 저자가 한 재소자에게 받은 질문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철학은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단 하나의 지식이나 정보도 달리 보게 만드는 일깨움이라고.  저자가 말하는 철학은 '박식함'이 아니라 '일깨움'입니다. 한마디로 철학은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며 결국 다르게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처음 철학을 접했을때는 어렵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언제부턴가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산산조각 나면서 철학에 매료되었습니다. 미디어의 노출로 자기 생각이 아닌 각종 언론이나 타인이 주입시킨 생각들을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자기만의 '도덕'이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책을 읽다 보면 날카로운 질문들 때문에 자기 안의 도덕이 무너져내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계기로 철학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내가 믿고 있던 통념들이 무너질때마다 희열을 느낍니다.

저자는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보다 문제는 초조함이라고 합니다. 초조함은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게 합니다. 초조한 자는 문제의 진행을 충분히 지켜볼 수 없기에 어떤 대체물을 문제의 해결책으로 간주하려고 합니다. 성급한 해결을 원하는 조바심이 해결책이 아닌 어떤 것을 해결책으로 보이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사태의 종결은 불가능해집니다. 파국을 막기 위한 조급한 행동이 파국을 영속화합니다. 우리가 믿는 많은 지름길, 금방 치료가 되고 금방 구원이 되고 금방 개선이 될 것 같아 보이는 그런 많은 길이 실상은 비극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 우리의 초조함이 닦은 놓은 것들 인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다른 모든 죄를 낳는 인간의 주된 죄 두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초조함과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초조함 때문에 천국에서 쫓겨났고 무관심 때문에 거기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철학한다는 것은 곧바로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름길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철학은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삶의 정신적 우회입니다. 삶을 다시 씹어보는 것, 말 그대로 반추하는 것.

 

지름길이 아니라 에움길로 걷는 것, 눈을 감고 달리지 않고 충분히 주변을 살펴보는 것, 맹목이 아니라 통찰, 그것이 철학입니다. 철학은 한마디로 초조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책 속에서 중국의 사상가 루쉰의 편지를 인용하였는데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굉장히 흥미롭고 마음의 울림도 있어서 발췌하였습니다.

 

<중국의 사상가 루쉰>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우리가 쉽게 부딪히는 난관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는 갈림길, 즉 기로에 서는 겁니다. 갈림길 앞에서 '묵자' 선생은 슬피 울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라면 결코 울며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우선 갈림길 입구에 앉아 잠시 쉬거나 한참 자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연후에 내가 갈 길을 정하여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길을 가는 도중 자비로운 이를 만나면 그의 음식으로 허기를 채울지언정 결코 그에게 길을 묻지는 않겠습니다.  그 역시 앞길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호랑이를 만난다면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호랑이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호랑이가 꼼짝 않고 서서 가지 않으면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을 겁니다. 나무에 허리띠로 몸을 묶어서 설령 그대로 죽는다 해도 호랑이가 내 몸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나무가 없다면? 그러면 별수 없지요. 호랑이에게 통째로 삼켜진다 한들 어쩌겠어요.

 

 

두 번째 난관은 '막다른 길'에 다다르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완적'은 통곡을 하며 돌아섰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막다른 길 또한 갈림길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시밭길이라 할지라도 헤쳐 나가야이지요. 온통 가시덤불로 뒤덮여 도저히 갈 수 없을 정도로 험난한 길은 아직 본 적이 없으니까요.

 

'

나는 이 세상에 본디 막다른 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게다가 운 좋게도 이제껏 그런 난관은 아직 겪어보지 못했던 것 같군요.

 

-루쉰의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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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저자는 비정규직, 장애인, 불법 이주자, 재소자, 성매매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의 곁에서 철학을 함께 고민해온 현장 인문학자다. 이 책의 제목에서 ‘하녀’는 권력의 테두리 속에서 ‘법’ 없이 사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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