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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마크롤랜즈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SF영화로보는 철학의 모든것

by 워니의서재 2018. 10. 14.


영화속 캐릭터들의 삶을 철학자들의 

철학을 이용해서 분석했다.

소설,시나리오 같은 이야기들은

캐릭터들에게 시련을 주고

그 시련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리는것이 기본적인 서사다.

그 극복과정에서 여러가지 길이 있을때

어떠한 선택을 하냐?에 따라서

삶이 완전 뒤바뀐다.

이 책의 첫장은 프랑켄슈타인 영화를

선택과 존재로 의문을 제기했다.



◆ 프랑켄슈타인


"장폴사르트르 는 우리는 세상에 내던져졌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존재에 대한 의문이된 그런존재다"

선택에 관한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면

우리 각작는 스스로 선택한 적도 없고 그저

어렴풋하게 이해할 뿐인 힘들의 산물이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시간에

선택하지 않은 부모님에게서 태어났다.

그래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고 오히려

상당한 정도로 우리를 통제하는 특정한

유전 형질을 전달받았다.




시지프의 삶에서 유일한 욕망은 바위를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것이며, 그는 이 욕망이 영원히 

충족되록 보장받는다.

무한하고 영원한 노동의 공포가 영원한 

권태의 공포로 대체된 상태다.

시지프의 삶은 그안에 아무런 목적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프랑켄슈타인 또한 의미없이 갑자기

세상에 던져졌다. 한 인간에 의해서


시지프의 삶은 인간과 비슷하다.

그래서 싯다르타와 니체는 삶은 고통이다 라고 표현했던가?

우리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만큼 아주

거창한 목적을 발견 하더라도

우리는 절대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성공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목적을달성하자마, 그것이

우리 삶에 불어넣는 의미는 사라진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면 성취감은 잠깐이다.

내가 사고싶었던것을 사도 성취감은 한순간이고

금방 또 다른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게된다.

어쩌면 한 집안이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끊임없이 부를 축적하려고 하는것이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의미가 사라지기에

공허감을 느끼지 않기위해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 매트릭스


매트릭스하면 데카르트가 떠오른다.
데카르트하면 관념론이다.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오라클을 만나려고 기다리는 동안
작은 숟가락을 구부리고 있는 터번 두른 소년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터번 두른 소년은 이렇게 말한다.
숟가락을 구부리려고 하지 마세요 그건 불가능 하니까요
그러지 말고, 진실을 깨달아보세요
숟가락은 없다는 진실. 그걸 깨달으면, 숟가락을
구부릴 일이 아니라, 실제로 휘어지고 있는 건
당신 자신임을 알게될 거에요.
숟가락은 물리적인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구성물이다. 그것이 바로 숟가락
구부리기가 가능한 이유다.
이러한 생각은 관념론의 한 형태다.
우리가 세계에 관해 조금이라도 아는것이 있디면,
그것은 우리가 우리 경험에 관해 무언가를 알기 때문이다.
경험에 관한 지식이 일차적인 것이며,
세계에 대한 지식은 그것에 근거를 두고 만들어진다.
주위를 둘러보면 여러 가지 것들이 보일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가 다루는 견해에 따르면, 본다는 것은
경험을 하는 것, 즉 시각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위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신의 경험이나
세계에 대한 관념이다.
즉, 당신은 당신 경험을 의식적으로 알게 될때에만
세계를 의식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 터미네이터

사이보그는 단지 강철과 전자회로로 
구성되므로 마음을 소유할 수 없다.
따라서 사이보그는 지능을 과시할 수도 없다.
사이보그는 우리가 프로그램한 일들을 수행하지만
진정한 지능은 그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이원론dualism이라고 알려진 견해다.
이원론자들에 따르면, 우리가 인간들 각자는 킬러 사이보그를
포함해서 다른 것들이 흉내 낼 수없는 매우 특별한 존재다.
이원론은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이며, 그런 마음이
수행하기로 되어 있는 일들이 도대체 어떻게 
수행되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철학에서 이원론과 반대되는 유물론materialism은
돈을 사랑하거나 축재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유물론은 단순히 우리가 순전히 물리적 존재이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견해다.


◆ 토탈리콜

토탈리콜에서는 우연적 변화를 이야기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우연적 변화라는 말의 의미는,
변화하는 대상의 존재를 끝장내기에 충분할 정도로  
중요하지 않은 변화라는 것이다.
흐르는 강물의 물 분자들이 바뀌는 것은, 설령 
전부 다 바뀐다 하더라도 단지 강의 우연적 변화일 뿐이다.
즉 그런 변화 속에서도 존속한다.
이제 강물이 완전히 마르고 강기슭도 다 흙으로 메워져서
마침내 강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는 분명히 강의 본질적 변화다.

아널드는 기존 기억이 지워지고 새로운 기억이
자리를 대신하는 변화를 겪는다.
버호벤-슈워제네거는 이것이 본질적 변화라고 주장한다.
예전의 아널드라는 사람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어떤 날의 우리와 그다음 날의 우리를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우리를 나머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우리의 기억이다.

이밖에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자유의지문제
할로우 맨에서는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인디펜던스데이-에일리언에서 도덕의 범위를
스타워즈는 선과 악
반지의 제왕에서 도덕 상대주의 문제
블레이드 러너 죽음과 삶의 의미를 다루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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