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루 출생 200명 선 첫 붕괴 '고령사회'진입도 코앞이라는 연합뉴스의 기사를 보았다.
출산율이 문제다. 출산율이 떨어진다. 고령사회로 진입할 거다.라는 이야기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매번 이슈가 되는 문제다. 그렇게 20년 동안 기사하되고 공론화되고 떠들었으면
바뀌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바뀐 것은 없고 매번 이슈화 시키고 기사만 써댄다.
이미 일본의 전례로 한국도 곧 고령사회로 접어들 것이고 출산율이 문제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20년 동안이나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은 처음부터 전혀 바꿀 생각이 없는 것 아닐까?
라는 결론밖에 나지 않는다. 정부가 내놓는 출산율 정책을 보면 너무 1차원적인 것들이 많다.
정책들을 몇가지 살펴보았다.
고용보험 미가입자도 '출산 지원금 지급
지금까지는 '180일 이상 고용보험 가입자'만 출산휴가 급여를 받을 수 있었지만
내년부터는 고용보험 미 적용 예비 부모로 확대하여 '출산휴가 급여' 50만 원씩 최대 3개월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에 따라 금액이 다르지만 대략적으로 '첫째 아이 200만 원, 둘째 아이 300만 원, 셋째 아이 600만 원
등을 지급합니다.
산모와 아이 의료비 혜택
선천성대사이상, 난청선별 검사 등 건강보험 적용, 산모 신생아 관리 서비스 확대, 진료비용의 50만원 지원 등
대략적인 정부의 출산장려 정책이다. 과연 저런 정책들이 '아이를 낳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정책인가? 출산을 꺼리는 사람들이 봤을 때 전혀 생각이 바뀌지 않는 정책들이다.
물론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들에게 저 정책은 나쁘지 않은 정책이다. 그러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으로는
잘못되었다. 하다못해 동물도 자신의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안전한 장소를 고르고 또 골라서 낳는다.
정말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아기를 낳고 돌본다.
그런데 요즘 청년층들이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할까?
그렇게 생각했다면 출산율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출산율과 노인 빈곤문제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연결되는 문제이다. 노후가 걱정되지 않으면 출산율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지금 세대들은 자신의 부모님과
빈곤노인들을 보면서 출산을 더욱더 꺼릴 수밖에 없다. 부모님이 지원해준 돈으로 교육을 받고 취업했지만 지금
벌어들이는 소득으로는 자신하나 겨우 먹고산다. 부모님이 늙어서 노인이 되면 모시고 살 수 있는 정도의 소득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거기다가 아이까지 생기면 자신에게 쓸 지출을 줄이고 아이에게 써야 한다. 지금 청년들은
부모님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이미 들여다보았다.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 이 아이도 커서 직업을 갖게 되고 벌어
들인 소득으로 자기 하나 겨우 먹고사는데 이 아이도 나를 부양해줄 수 없겠지.라는 생각을 당연히 자연스럽게 할
것이다. 결국 불안한 노후는 출산율 저하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가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 없다면서 해외여행 잘 다니고 비싼 음식 잘 먹으러 다니던데... 지금과 2000년대 삶을 비교하면 끝이 없다.
과연 지금 세상과 80년대를 비교하면 옳은 것일까? 사람의 행복은 상대적이다. 절대적이 아니다.
현재의 사회에서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타인이 없는 나는 규정될수 없다.
슬픔이 있어야 행복이 있고, 거짓이 있어야 진실이 있다. 나 또한 타인이 있어야 '나'라는 사람으로 규정된다.
카프카의 '변신'소설에서 가족들이 괴물로 변한 주인공 그레고리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죽기를
바랬다. 주인공 그레고리가 가족들에게 저 그레고리에요. 라고 말해도 인정해주지 않은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삶에 맞게 삶은 현재의 삶에 맞게 비교해야 한다. 여행 잘 다니고 비싼 음식 잘 먹으러
다니더라라고 비난한다고 반성하고 출산율이 올라가지 않는다. 근본적인 문제는 아이를 낳기보다 차라리 내 인생
즐기겠어라는 생각으로 변한 것이니까. 여기서의 문제점은 아이를 낳고 내 삶의 크게 변화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산 전에 여행 잘 다니고 맛있는 거 먹고 사고 싶은 거 사면서 취미활동을 해왔는데 아기가 생기고 내가 잘 해오던
것들을 다 포기해야 한다면 내가 즐기고 있던 것들보다 '육아'가 더 행복해야 포기할 수 있다.
그러나 아기를 낳으면 직장에서 남자나 여자나 눈치만 준다. 요즘 아빠 육아휴직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중소기업은 아직도 육아휴직 3일 쓰는 것도 굉장히 눈치 주는 곳이 많다. 그리고 많은 회사들이 아직도
야근하는데 가 많아서 '육아'는 거의 여성이 전담해서 하고 남성은 도와주는 형태로 밖에 안되다 보니 더더욱
출산을 기피하게 된다. 그런데 정부가 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현상을 '기업'에게 돌리지 않고 육아를 도와주지
않는 남성으로 더 이슈화 시킨다. 일단 야근이 없고, 정말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그때에도 잘 바뀌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남성들은 육아를 같이 하지 않는다.라고 공격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 환경은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격적으로 얘기한다면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남성들이 과연
아이를 낳고 싶어 할까? 내 주변 지인들 중 결혼해서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혼하고 여성들이 출산을 꺼린다고 많이들 생각하지만 남성들도 꺼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일단 낳으면 무거운 책임감이 부여되고, 남성도 똑같이 취미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아이가 생기면 힘든 점을
남성만 보아도 이렇게 많은데 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더욱더 많기 때문에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요즘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이슈에도 정부가 대하는 태도를 보면 출산율은 더 저하될 것이다.
생각보다 결혼을 꺼리는 남성도 많다. 그러나 언론에서 결혼을 꺼리는 남성은 잘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내 주변 지인이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결혼을 꺼리는 남성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나는 결혼해서 지금 생활에 굉장히 만족하며 잘 살고 있지만 지금의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을 만날 때
나조차도 잘 만나서 결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결혼율도 줄어드는 마당에
출산율 증가는 턱도 없는 얘기다. 하루빨리 남녀 갈등부터 해결하고, 출산 후 경력단절이나 육아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해야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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