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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었던 문장/책속문장

소설 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 에서 문장모음

by 워니의서재 2018. 12. 18.


프롤로그

옛날에 소리나무 놀이가 있었다.

마을에 소리나무들이 찾아오면 

놀이 가담자들은 소리나무들과 얼굴과 마주하고

몇 날 며칠을 두드리며 놀았다.

놀이가 끝나면 소리나무들은 물었다.

내가 누구야?

마을을 떠날 때,

소리나무들은 질문에 대답한 사람들을 데려갔다.



P31.

갑자기 아버지가 어깨를 드러내고 보란 듯이 멍 자국을 디밀었다.

"여기 암만해도 뻐끗한 것 같아. 

내가 오늘 김 씨네 창고 치우는 거 돕는다고 힘 좀 썻거든. 그런데....."

"지금 뭐 하시는 거에요?"

"뭐 하긴, 너한테 나 아픈 데 보여주는 거잖아."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런 짓을 왜 하는데요?"

아버지가 눈을 끔뻑거리다가 말했다.

"가족에게 아픈 곳을 보여준다는 건 관심과 위로를 받고 싶다는 뜻이야."

P32.

"오늘 수요일인데, 출근은?"

밥알을 씹던 내 얼굴이 절로 찌그러졌다.

"월차 냈어요."

"그 삭막한 전쟁터에서 그런 거 함부로 내도 되는 거냐?"

"아무리 삭막한 전쟁터라도 똥은 싸야죠."

P35.

그의 주머니에서는 뭐든 필요한 것들이 나왔다. 스카치테이프, 압정, 안약, 목장갑,

볼펜, 문구용 칼 같은 것들, 나는 만물 주머니를 달고 있는 그의 마음속을 진작 읽었다.

하루빨리 모든 것을 갖춘 어른 남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야 자기 아버지에게

맞설 수 있을 테니까.

P40.

종목은 별다른 직업 없이 도동 마을 재래시장에서 채소 가게를 하는 어머니의 일을

돕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어머니의 가게를 차지하고 거기서 뜯어낸 돈으로 술집이나

들락거리며 사는 것이 딱 제아버지라고 손가락질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종목이 악착같이 가게에 붙어 있는 것은 어머니가 또다시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지 않도록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가게도 집도 모두 그의 명의로 돌려놨다.

어머니의 전대도 그가 관리했다. 하지만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목이 어머니의

집과 가게를 가로챘다고 비난했다. 어머니가 사정을 설명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오히려 타이르듯 말했다. 아들 그만 감싸고 정신차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야.

그들은 종목이 눈 뜨고 못봐줄 정도로 엉망진창 술에 취해서 아무에게나 시비 

거는 것을 보아왔다. 사실은 시비가 아니라 말을 걸었던 것이지만,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 사람들 사이를 배회했던 것뿐이지만. 하지만 그가 처한 상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어머니의 집과 가게를 꿰차고 술이나 처마시는 백수 망나니일

분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믿었다. 그들 눈에 종목은 영락없는 

제 아버지의 판박이였다.


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
국내도서
저자 : 조선희
출판 : 네오픽션 201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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