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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소설

책 리뷰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by 워니의서재 2019. 2. 14.



우선 책을 읽고난 소감을 간략하게 표현하면 400페이지가 넘는 '시'를
읽은듯한 착각을 불러올정도로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말 중 생소하고 예쁜 말도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영화로 비교하자면 '리틀포레스트'와 같이 잔잔한 이야기를 본듯한

느낌이 듭니다. 


물론 저는 남성의 입장에서 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여성이 읽게되면
느끼는 감정이 다를수 있습니다. 소설속에 빙허각은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지는 점이 있습니다. 특히 시댁과의 관계에서
너무 완벽한 모습으로 시어머니의 마음을 얻어내는데, 소설처럼
과연 가능할까? 의문이 들긴 들었습니다.


이 소설의 특징은 큰 사건이나 자극적인 내용은 없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해서 최대한 그 시대에 여성의 삶을 잘 표현하려고 노력한

흔적 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빙허각은 한중일 3국 실학자 99인 중 유일한 여성 실학자, 《규합총서》와
《청규박물지》의 저자, 자동약탕기 발명가입니다. 본래 이름은 이선정인데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이름을 빙허각으로 변경합니다.

“기댈 빙憑, 빌 허虛, 집 각閣 빙허각이온데 ‘허공에 기대어 선다’라는 뜻으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담은 이름입니다.


자동탕약기 발명 이외에도 빙허각은 수학적인 사고로 음식을 만들때도

정량화 시켜 매번 같은 맛을 유지하여 시어머니에게 칭찬받고 동서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습니다. 그리고 오랜시간이 들어가는 음식들은 직접

만들지 않고 다른곳에 의뢰해서 음식을 준비합니다. 빙허각은 미래를

내다본듯 합니다.



자신의 독서시간과 공부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또 동서들을 위해 시간이

오래걸리고 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일은 요즘 표현하는 말로 '외주화'

처리 하였습니다. 지금도 시간관리 책이나 자기계발서들을 보면 자신의

시급이 비싼경우에 효율이 떨어지는 일들을 외주화 하라는 말이 조언이

많이 등장합니다.



빙허각은 수 많은 일들이 있을때 수학적으로 사고하여 우선순위를 확실히

가려냅니다. 심지어 결혼할 대상을 선택할때도 우선순위를 생각합니다.

자신이 너무도 사랑하는 정조와 결혼하게 되면 조선여자중 서열10안에는

들것이고, 남들이 부러워하고 우러러 볼것인데, 사랑도 포기하고

권력도 포기합니다.


이는 빙허각이 생각할때 우선순위가 안정된 환경에서 서책을 읽고 편찬

하며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빙허각은

스스로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책속에서 아름다운 문장 몇개를 발췌하였습니다.


P17. 서쪽 하늘이 유난히 노란 노을빛으로 물든 봄 어스름 무렵,

선정은 해가 질수록 향과 색이 진해지는 봄꽃에 취해 후원을 걸으며 나지막이

콧노래를 불렀다. 마침 불어오는 저녁 봄바람에 분홍나비, 흰나비가 된 작은

꽃잎은 춤을 추다가 선정의 머리에도 어깨 위에도 살며리 내려 앉는다.


P47. 휘영청한 달빛을 받고 선 딸은 자신을 바라보는 아비의 미간에 근심이

살짝 스치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잠들어 있던 연못 속 물고기들이 단잠을

깨운 불청객이 누군지 보려는 듯, 빼꼼 머리를 내밀고 주둥이를 몇 번 뻐금

거리다가, 다시 잠을 청하였는지 잠잠하다.


P52. 보름을 이틀 앞둔 달도 당돌한 소녀의 말에 놀랐는지, 구름속으로 쏙

숨어 먹물을 뒤집어 쓴 듯 사방이 캄캄하다.


P73. 큰 소년은 쏟아지는 별빛에 눈이 부신 듯 눈을 깜빡이다가, 별빛을 눈에

담으려는 듯 한참 하늘을 본다. 서명응을 만나고 온 날 밤, 이창수는 장미와

수국이 가득한 꽃밭에서 옥비녀로 쪽진 머리가 어색한 듯 수줍은 미소를 짓는

새색시 선정을 보았다. 꽃향기를 담아 부풀어 오른 달짝지근한 공기는 소녀

선정의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준다.



굉장히 두꺼운 책임에도 몇일만에 금방 읽었습니다. 지루하지 않고

페이지가 술술 넘어갑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수집하는 재미

또한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어디 써먹을 만한 문장이 없나?" 생각

하고 밑줄그어가며 읽다보니 어느새 페이지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문장 수집을 원하거나 조선시대의 여성의

삶을 간접적으로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국내도서
저자 : 곽미경
출판 : 자연경실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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