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 자아 ( Page 110~ 120 요약 )
로버트 옥스남(Robert B. Oxnam)은 해리성 정체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즉, 다중인격 장애를 진단받았다. 그는 정신 질환을 겪는 자기 삶을 <분열된 정신 A Fractured Mind>이라는 책에 담았다. 책에서 옥스남은 치료 과정 중 위에 소개된 여러 '분신(alter)'들이, 마치 다른 인물이 등장하듯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다가 보비·로버트·완다만이 최소한 부분적으로 통합되어 조화로이 남게 되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90년 밥은 아주 심각한 상태였다. 당시 그는 상당히 성공한 명망 있는 학자였지만 알코올 중독, 식용 이상 항진증(폭시과 구토를 반복하는 증세),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걱정스러운 증세는 따로 있었다. 과거 10년 동안 자기도 모를 기억의 공백이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끔 점심 약속이 취소되었을 때, 정오에 나가서 오후 3시쯤 돌아왔는데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만으로 출장 갔을 때는 모든 약속이 취소되었는데 사흘 동안 다시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사흘의 기억 공백에서 빠져나왔을 때는 끔찍한 두통을 느꼈고 팔에는 담뱃불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한 시간의 심리 치료가 끝났는데도 정작 옥스남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느꼈다. 심리치료사 제프리 스미스(Jeffrey Smith) 박사는 50분 동안 자기를 토미라고 밝힌 화난 청년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해주었다. 옥스남의 육체는 병원 안에 있었지만 마치 그가 자신의 육체를 떠나고, 토미가 이를 장악한 것 같았다. 옥스남은 이후 여러 해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다. 치료 과정에서 9명의 '분신'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과 더불어 성을 둘러싼 모든 비밀도 밝혀졌다.
'분신'들 중 누구도 다른 '분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인식하지 못했다. 각기 서로 교류가 없는 완전히 독립된 개인들 같았다. 이들이 번갈아가며 의식의 바통을 잡았는데, 반드시 한 번에 한 사람만 바통을 쥘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통을 넘겨준 다음 그들은 으슥한 무의식 속으로 숨었고, 계속해서 옥 스남의 삶에 은밀하게 영향을 미쳤다.
적어도 옥스남과 스미스가 이해한 바로는 그랬다. 하지만 해리성 정체 장애는 분명 논란이 많은 질환이다. 미국정신의학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펴내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에 해리성 정체 장애가 최초로 실린 것은 1980년이었다. 하지만 편람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거의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1973년까지 편람에는 동성애가 정신질환의 하나로 게재되었고, 최근에는 '부모 자녀 관계 문제'를 진단 가능한 정신질환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해리성 정체 장애는 <DSM>에 처음 등장한 이후 10년간 보고 사례가 200건에서 4,000건으로 늘었다.
스미스 같은 많은 해리성 정체 장애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다수 사례가 유년 시절의 심각한 학대에서 비롯된다. 분열은 기본적으로 참을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든 참아내기 위한 대응방법이다. 묘한 방식이지만 어찌 보면 지극히 합리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만약 자기에게 일어난 어떤 일을 두고 '이런 일은 나한테 일어날 수 없어'라고 생각하면, 논리적 귀결은 '다른 누군가에게 일어나고 있어'가 된다. 만약 '참을 수가 없어'라고 느끼면, 우리를 대신해서 거기에 대처할 누군가를 만들어 내게 된다. 사실 사람들이 대부분이 알게 모르게 이런 생존 전략을 구사하면서 살아간다. 해리성 정체 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처럼 극심하지 않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사교활동을 싫어하는 내성적인 사람은 때로 외향적인 '분신'을 만들어낸다. 자기가 주최한 만찬회가 끝날 때까지만 버텨주면 되는 일종의 가면과 같은 존재다. 직장에서 싫은 업무를 해야 하는 사람은 작업을 입고 벗는 행동을 경계 긋기로 인식할 수도 있다. ( 진짜 자아와 억지로 해야 하는 역할 사이의 자기 자신을 둘로 나누는 경계 긋기 )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어디까지나 역할로만 분명하게 이해한다. 말하자면 '진짜 자아'와 '일시적 가면'이 근본적으로 분리되어 별개의 개체처럼 행동하는 일은 없다. 해리성 정체 장애의 질적으로 다른 특성은 이런 분리가 의식을 가진 자아의 깊은 내면까지 파고들어 간다는 사실이다. '분신'들 사이에 '기억 장벽 (Memory barrier)'이 만들어지고, 분신들의 기억 · 생각 · 행동 등이 서로 완전히 분리된다. 그러므로 전형적인 해리성 정체 장애 사례에서 학대를 받은 피해자는 고통스러운 경험과 기억을 다른 분신과 공유하지 않는 별개의 분신이 된다.
하지만 이런 자기 방어 전략은 어느 정도까지만 효과가 있다. 각각의 분신을 분리, 유지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힘든 노동이다. 더구나 그렇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아의 자원을 나누는 것이다. 한쪽 분신이 창조적 능력을 갖고, 다른 분신이 자제 능력을 갖는 식이다. 이런 식의 자원 자원 분산은 각각의 분신들이 전체가 하나가 되는 데서 오는 장점들을 빼아 긴다는 의미다. 또한 지배적인 분신, 즉 대부분 시간 동안 의식을 유지하면서 타인에게 보이는 이미지를 대표하는 분신이 종종 심각한 기능 이상을 보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떤 심리치료사가 고객이 학대로 고통스러워한다고 믿으면, 부정은 억압 상태에 있음을 가리키는 신호로 간주되고, 긍정은 억압을 극복했다는 신호로 간주된다. 해리성 정체 장애 신봉자들은 유년 시절에 받은 학대가 장애를 일으키는 일반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진단 과정에서 고객의 긍정과 부정이 모두 긍정으로 간주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결코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기억하게끔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리성 정체 장애 환자 대부분이 학대를 받았다는 증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주장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사람들이 삶의 각기 다른 국면들 사이에 '기억 장벽'을 만들고 한쪽 장벽 안에 있는 동안에는 다른 장벽 안에서와 다르게 행동하는 상황이 가능하다. 여러 분신들로 빚어진 풍부하고 균형 잡힌 성격과 많은 구체적인 기억들이 전부, 혹은 거의 작화이긴 하지만, 동시에 해리 증상은 사실일 수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분신'들은 해리라는 현실을 납득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화일 수도 있다.
이해하기 쉬운 비유로 공용 데스크톱 컴퓨터를 들 수 있다. 공용이기 때문에 우리가 컴퓨터를 쓰려면 일단 컴퓨터를 켠 다음 특정 사용자로 로그인해야 한다고 가정하자. 전원을 켜고 사용자로 로그인을 하는 순간, 우리는 다른 사용자들 사이에 일종의 '기억 장벽'이 있는 가상공간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다른 사용자의 파일에 접근하지 못하고. 그들도 우리의 파일에 접근하지 못한다. 사용자에 따라서 접근 가능한 기능까지 달라지는 공용 컴퓨터도 있다. 따라서 인터넷을 어른들과 일정 연령 이상의 아이들에게만 허용한다거나, 다른 사람이 여러분이 쓰는 이미지 처리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모두 가능하다.
자아가 불변의 핵심이 없고 이론적으로 다수일 만큼 충분히 유동적이라면, 일상생활에서도 우리의 자아가 상당한 다중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는가? 단일한 자아라는 개념에 금이 간 이상, 과감하게 한발 더 나갈 수는 없을까? 이를 하나뿐인 강력한 '나(I)'의 부재 속에 다수의 취약한 '우리(We)'가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선 안되는가?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293323
'지식창고 >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추천 철학 입문 (10) | 2019.05.09 |
---|---|
유시민 글쓰기 특강 추천도서 (0) | 2019.04.18 |
줄리언 바지니가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0) | 2019.04.04 |
프랑스 철학 장폴 사르트르의 타자론 (0) | 2019.03.29 |
뇌 이야기 수면중에 뇌에서 일어나는 일 (4) | 2019.03.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