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은 제 스스로도 그렇고 뭔가의 실체를 명확히 규명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시대착오적이라고 하면서 부정한다. 심지어 규명할 실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이런 속성을 갖고 있음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아를 복수로 보는 관점에 더없이 좋은 동조가 될 수 있었다. 그 이유를 밝히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포스트모더니즘에 통일된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더니즘으로부터 가져와서 폭 넓게 사용된 '파편화(fragmentation)'라는 모티브일 것이다. 이는 포스트모던 건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전까지 수많은 양식의건축물들이 있었고, 각각은 고유한 양식, 통일성, 동질성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교회라도 노르만, 고전주의, 신고전주의, 고딕, 로코코, 모더니즘 등 다양한 양식으로 건설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런 선명한 구분을 거부했다.
건축 양식들은 다른 양식이 섞일 수 없는 특정한 정수만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양식의 대표적인 특징들을 선택하고, 새로운 요소들을 추가하면서, 카드를 섞듯 여러 양식을 뒤섞을 수 있다. 도리아식 기둥에 고딕창문, 모더니즘 문으로 하면 어떨까? 건물이 왜 특정 양식만을 따라야 하는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런 성향은 파편화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이런 성향의 밑바탕에는 다양한 형태의 본질주의(essentialism), 즉 실재론(realism)에 대한 지적 거부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전에는 대부분의 주류 사조가 실재를 하나의 진정한 본질을 가진 것으로 간주했다. 예컨대 과학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연구해서 물질계의 본질을 꿰뚫는 하나의 통합된 해석을 내놓으려고 했다.
지리학은 세계를 지도로 표현하는 데 치중하면서 가장 정확한 지도가 나오면 지도 제작을 둘러싼 경쟁이 종식될 것으로 보았다. 역사는 발생한 일에 대한 이야기였고, 실제로 발생한 일들의 진실을 밝히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런 것들을 모두 거부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보기에 세계는 우리가 설명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진정한 본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실재는 실재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의해 구성되고 만들어진다. 역사는 과거에 대해 우리가 말하는 이야기들로 창조되는 것이며,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무수히 다른 이야기들이 창조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구를 각기 다른 다양한 방식의 지도로 그려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보기에 지표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과학 또한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서 말하는 이야기의 모음집 같은 것이다. 어떤 이는 도구적 가치에, 어떤 이는 미학적 가치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 모음집이 현실세계의 본질을 말해주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런 태도는 거대서사 혹은 메타서사에 대한 거부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인간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세계를 이해한다. 메타서사는 모든 것을 뭉뚱그린 커다란 이야기다. 역사에 관한 거대서사는 과거를 설명하는 일관성 있는 하나의 이야기를 제시한다. 과학에서 거대서사는 물질계를 설명하는 단일한 이야기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보게되면 이런 거대서사들은 모두 틀렸다. 고정된 본질이 없는 세계에 하나의 통일된 구조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보이게 우리에겐 하나가 아니라 복수의 서사가 필요하다. 즉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 사는 이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다양하고 상호 모순되는 관점과 견해들을 담아 낼 수 있는 다수의 서사들이 필요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저에 있는 많은 생각들이 더할 나위 없이 합당하다. 우리는 이미 그것들 중 많은 것을 접했다. 자아가 불변의 본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은 합당하다. 자아가 부분적으로는 만들어진 구조물이라는 생각도 합당하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서 말하는 자서전적 서사들이 실제 삶에는 결여된 질서와 일관성을 만들어낸다는 생각도 합당하다.
그렇다고 정반대의 극단적 논리를 취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하나의 거대서사를 거부한다고 해서, 무한히 많은 모순되는 서사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가공하기 쉽고 변하기 쉬운 인간의 가단성을 지나치리만큼 과장한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동조자들을 포함한 모든 인간에게 불변의 본질이 없다고 하더라도, 실제 생활에서는 놀라울 정도의 지속성과 통일성을 보여준다는 간단한 관찰만으로 그런 과장이 잘못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293323
'지식창고 >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시민 글쓰기 특강 추천도서 (0) | 2019.04.18 |
---|---|
에고트릭Ego Trick 해리성정체장애(다중 자아) (0) | 2019.04.12 |
프랑스 철학 장폴 사르트르의 타자론 (0) | 2019.03.29 |
뇌 이야기 수면중에 뇌에서 일어나는 일 (4) | 2019.03.18 |
인간은 은유를 통해 사고한다? (0) | 2019.03.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