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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시&에세이

여행의 이유 김영하 산문

by 워니의서재 2019. 4. 26.

김영하 작가는 소설과 여행이 닮아있다고 말합니다. 여행은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이는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렘과 흥분 속에서 낯선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천천히 알아가다가, 원래 출발했던 지점으로 안전하게 돌아오게 되고, 독자와 여행자 모두 내면의 변화를 겪기 때문입니다

 

어젯밤 10년 동안 시리즈로 개봉하던 어벤져스의 마지막 편 엔드게임을 봤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마치 10년 동안의 여행을 끝마친 느낌이었습니다. 여행과 소설이 닮아있듯 영화도 여행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나라는 존재를 잊어버리고 낯선 세계로 들어가 탐험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내가 영화관에 앉아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합니다. 모든 이야기가 있는 요소들은 여행과 닮아있는 듯합니다.

 

 

작가는 여행의 이유를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또는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왕좌의 게임이 생각났습니다.  왕좌의 게임에서 아리아는 '자켄'에게 "너는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야 한다.

 

그대는 과거를 지우고 얼굴이 없다. 이제부터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야 한다."라는 대사를 보고 그 당시에 그냥 암살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왕좌의 게임에서 아리아 스타크는 낯선 땅을 여행하며 여기저기 떠돌아다닙니다 그리고 자켄의 조언에 따라 자신의 신분을 최대한 숨깁니다.

 

작가의 말대로 과거에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여행자가 되는 경우도 많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여행을 통해 아리아의 내면은 굉장히 성장합니다.

 

작가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P64.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 그들로부터 들은 뼈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구석 구석에 묻어있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 순간 일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여행지에 있는 동안만큼은 잠시 먹고 사느라 복잡하게 생각하던 감정들을 내려놓습니다. 저 또한  그런 경험을 해봤어요.

 

장기여행을 많이 경험한 김영하 작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여행지라도 한 곳에 오래 머물면, 곧 일상이 되어버리고 일상이 되면 더 이상 여행이 아니라고 합니다. 다시 그곳에서 고되고 힘든 기억들이 생기게 되니까요.

 

제가 해외여행 갔을 때를 떠올려보면 한국에 있을 때 보다 오히려 마음이 더 편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나의 존재를 잘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고, 또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으니까요.

 

김영하 작가는 현대의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누구도 자신이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알기 어렵다고 합니다. 과연 목적지가 존재하기나 하는지조차 모른다고 합니다. 어차피 알 수 없으면 많은 것들이 그저 우연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런 태도로는 불가능한 것을 통제하려는 충동은 줄일 수 있겠지만, 필연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합니다.

 

작가는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소설 쓰던 경험을 통해 여행을 이야기합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 더 명료해진다고 말합니다.

 

 

P136. '저 끝없는 고요 속에 떠 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지구의 승객 riders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 승객은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왔다가 떠나는 존재일 뿐이다.

 

P138. 인류는 오래전부터 인생이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선가 오고,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결국은 떠난다. 우리는 극단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지구라는 별에 도착했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유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김영하 작가가 유럽여행 중에 있었던 일화를 이야기합니다. 저자가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려고 할 때 백인 두 명이 다가와 자신들도 암스테르담 간다고 같이 여행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유럽의 밤기차는 컴파트먼트 구조로 되어 있어서 낮체는 양쪽에 세 명씩 여섯 명까지 마주 보며 앉아서 가지만 밤에는 의자를 앞으로 당겨 간이침대처럼 만든 후, 세명까지 누워서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녀들은 김영하 작가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요? 아니었습니다. 그녀들은 보호해줄 남자가 필요해서 같이 여행하자고 부탁했습니다. 왜 하필 김영하 작가였을까요?

 

그 이유는 한 컴파트먼트에서 밤새 같이 있기에 가장 안전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서구에서 동아시아 남자들에 대한 선입견을 그대로 따른 것뿐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미국 영화나 TV 드라마를 보면 그런 고정관념이 여전히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P154. 그들은 과하게 예의 바르거나, 부모의 열렬한 교육열에 힘입어 공부만 죽어라 하고 운동 같은 것은 젬병인 공부벌레인데, 언어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백인 여성을 공격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들은 그냥 그들만의 세상으로 소심하게 제 할 일만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로 그려진다.

 

저자에 의하면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고 합니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고정관념이 정체성을 대체합니다. 즉,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게 아니라 그저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자'라고 합니다.

 

김영하 작가에 의하면  도시의 주민들이 여행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방식을 적극적으로 조정하고 맞춘다고 합니다. 때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 현지인 사이에 숨으려 하고, 누군가로 확연히 구별되고자 합니다.

 

 

뉴욕이나 파리, 바르셀로나 같은 선진국의 매력적인 도시에서는 여행자가 되기보다는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 눈에 띄지 않으려 합니다. 마치 거기 현지인이 된 것처럼요. 그러나 식민지 인도에 부임했던 대영제국의 관리들이 찌는 듯한 폭염에도 셔츠의 단추를 풀지 않고 긴소매의 재킷을 고집했던 것처럼 자신이 좋지 않은 도시라고 생각되는 곳에서는 여행자의 표지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은 김영하 작가의 말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는 힘들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혹은 누군가가 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요. 이렇게 여행을 하는 이유는 정말 제각각입니다.

 

 

P 163. 아무것도 아쉬울 것이 없는 무인도에 도착했지만 오디세우스의 마음은 어딘가 허전했던 것이다. 말 못 하는 염소 떼 문이었던 것. 배가 채워지자 그의 마음속에 다른 욕구가 고개를 들었다. 인정의 욕구. 낯선 땅에 사는 존재로부터 찬사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고향 이타케에서는 왕이었고, 트로이에선 영웅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언제나 섬바디였다. 그런데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측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바다는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나뭇잎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의 자아는 쪼그라들었다.

 

P 165. 국내에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나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아는데, 해외에서 나가면 내가 누구인지를 나만 아는 것 같았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자기만 아는 상태가 지속되면 키클롭스의 섬으로 쳐들어가는 오디세우스와 비슷한 심리상태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시간이 많은 흐른 후에야 그 시기에 내가 겪은 것이 단순한 게임 과몰입이 아니라 가벼운 우울증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던 시절이면 나는 무엇에든 쉽게 중독되어 자신을 잊기를 바랐다."

 

 

P 179.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함 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P 181. 여행자 오디세우스를 위험에 빠뜨린 것은 그의 허영심이었다. 그를 위험에서 구한 것은 스스로를 노바디로 낮춘 덕분이었다. 그는 자기 이름을 감추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

 

P 184. 그는 섬바디로 여행을 시작했지만 허영과 자만으로 화를 자초한 이후부터는 노바디로 스스로를 낮추었고 그 덕분에 고난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P 185. 여행은 습격이 되고 여행자는 침입자가 된다. 그 결과는 불필요한 고난으로 여행자 자신에게 돌아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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