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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창고/인문학

주자학의 나라 조선

by 워니의서재 2019. 1. 31.

조선이 탄생한 계기는 세습 귀족들이 주요 관직을 돌아가며 맡았고,

기득권이 굳어질 대로 굳어져서 어떤 개혁도 먹혀들지 않았다.

고려 말의 신진 사대부들은 부모를 잘 만난 덕에 관료가 된 사람들이

아니라, 과거로 실력을 인정받아 당당하게 관직에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보았던 과거는 유교 경전인 사서, 논어, 대학, 중용, 맹자에 담긴

공자의 가르침을 '시험범위'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학은 중국 한나라

이후 국가의 운영 원리로 이미 굳어진 철학이었다. 



부패한 귀족들을 이들의 진출을 가로막았다. 고려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신진 사대부들은 이성계를 중심으로 마침내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를 뒤엎는데 성공했다.


주자학에는 태극이론, 음양, 이기, 심성론 등이 어려운 용어가 많이 나온다.

'자연 과학과 심리학의 도움으로 도덕 이론을 더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함이다.

주자의 가르침 가운데 신진 사대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구절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위기지학의 이념이다. 공부의 목적은 성인이 되는데 있지, 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는 뜻이다.


둘째는 주자가 강조한 격물치지 정신이다. 인격 수양을 위해서는 먼저 사물을

연구하고 세상 만물의 이치를 깨달아 무엇이 진정 옳고 그른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사물을 연구 한다는 것은 사실을 잘 관찰하고 분석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미 공자와 맹자 같은 옛 성현들이 이런 작업을 완벽하게 해 놓았으므로,

후대 사람들은 이들이 남긴 글을 깊이 되새기기만 하면 된다.



격물치지는 신진 사대부들이 우월한 자들임을 보여주는 핵심 이론이다.

권력을 잡은 신진 사대부들은, 철저하게 주자학의 이상에 따라 나라를

다스렸다. 이 점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결심하면서 내세운 명분

에도 잘 드러난다. 명나라를 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로 '작은 나라가

큰 나라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대으이 어긋남'을 내세웠다.



민주주의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어처구니 없는 사대주의적 발상이지만

주자학 관점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세상은 도덕과 예절에 따라

질서가 잡혀 있어야 한다. 윗사람의 권위가 서 있어야 가정이 안정되듯,

세상은 중국을 중심으로 위계가 잡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자학의 이념은 성문의 이름을 정하는 데도 반영되었다. 서울 동대문의 이름은 홍인문,

서대문은 돈의문, 남대문은 숭례문, 북대문은 홍지문 그리고 그 문을 열고 닫게 하던 종이

있는 자리는 보신각이다. 여기서 가운데 글자만 따면 '인의예지신' 이는 곧 유교의 생활

원리인 오상을 가리킨다.



조선은 인류 역사상 그 어떤 나라보다도 학문을 강조했던 국가다.

권력의 정당성이 학문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조선의 권력은 왕과 신하

간의 끊임없는 견제와 균형 속에서 유지 되었다.



학문과 인격수양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주자학적 태도는, 소모적인 당파 싸움의

원인이 되곤했다. 정치는 정책 대결보다는 명분싸움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

유학의 지식은 엄밀히 말해서 지도자의 품성에 대한 것이지 일상 실무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상대방이 정책적인 실수를 했다는 것보다는 인격이나 예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더 큰 공격거리가 되곤 했다.



숱한 권력 투쟁 속에서, 유학의 수많은 명분들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결국 조선 말기의 주자학적 이상은 어려운 한문으로 백성들을 주눅들게

하거나, 정적의 꼬투리를 잡기 위한 권력의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철학, 역사를 만나다
국내도서
저자 : 안광복
출판 : 어크로스 2017.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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