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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미디어

왕좌의게임 시즌8 5화 스포주의 대너리스와 다크나이트 하비검사

by 워니의서재 2019. 5. 15.

왕좌의 게임 시즌8 5화를 보고 대너리스 폭주로 실망했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개연성이 없다는 의견도 많았고요. 저는 5화를 보고 나서 충분히 대너리스의 심정은 이해가 갔습니다. 하지만 스토리의 개연성에서는 조금 납득이 안되더라고요. 현실적으로 바라볼 때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세상은 개연성이 없기 때문이죠.

 

한 가지 예로 "몸은 기억한다"는 책은 30년 이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분야를 연구한 의학박사가 자신의 환자와 상담과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트라우마’를 분석한 책입니다. 이 책 속에 문장을 가져와 설명하겠습니다.

 

 

"톰은 곧 해가 지려는 시각에 소대를 이끌고 벼가 가득 자라고 있는 논으로 도보 정찰을 나섰다. 그런데 밀림으로 빽빽하게 둘러싸여 있던 주변 어디선가 갑자기 기관총 세례가 퍼붓기 시작하더니 톰 가까이에 있던 장병들이 하나둘 총알에 맞아 쓰러졌다. 톰은 단 몇 초 만에 소대 전체가 죽거나 다치는 광경을, 공포에 사로잡혀 무기력하게 바라보았던 그때의 상황에 대해 내게 이야기했다.

 

"논에서 매복했던 바로 그다음 날, 톰은 정신이 나간 상태로 근처 마을로 갔다. 그곳에서 어린아이들을 죽이고, 무고한 농부에게 총을 쏘고, 베트남 여성 한 명을 강간했다. 그 일로 인해 톰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의미를 다 잃어버렸다.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당신과 같은 여자를 잔혹하게 강간했다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이 처음 발걸음을 떼는 모습을 보며 자기 손으로 죽인 아이가 생각난다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대너리스가 폭주하던 장면과 비슷합니다. 왕좌의 게임에서 철저하게 3인칭 시점이 아닌 대너리스 시점으로만 보자면 존 스노우를 위해서 북부까지 가서 나이트 킹과 전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용이 죽게 되고, 조라 모르몬트도 죽게 되었죠. 거기다가 대너리스를 따르던 많은 병사들이 죽었습니다. 대너리스 시점에서만 보자면 "내가 그렇게까지 해줬는데 그깟 '타가리옌 혈통'이란거 숨기면 안 되나? 날 위해서 그 정도도 못해주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우리는 3인칭 시점이니까 존 스노우의 성격을 충분히 알고 있죠. 하지만 대너리스와 존 스노우는 시즌7에서 만났고, 그런 존스노우의 성격을 알수 없었을꺼에요. 대너리스 입장에서는 충분히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거기다가 바리스가 배신하고 티리온마저 자신을 탐탁지 않아한다는 것을 충분히 감지했으니까요. 대너리스 입장에서 내가 이만큼 희생했는데 아무도 날 여왕으로 생각해주지 않아 라는 생각이 충분히 들 수도 있지요. 자신이 그렇게까지 해도 사람들은 존 스노우만 좋아했으니까요.

 

결국 용 한 마리가 더 죽고 눈 앞에서 미산 데이가 죽었을 때 지금까지 참아왔던 분노가 터진 것이죠. 저 위의 사례로 든 논밭에서 기관총에 맞아 죽은 동료 때문에 마을 주민들을 학살한 것처럼 대너리스 또한 킹스 랜딩의 주민들을 학살한 것이죠.

 

역사적 사례로는 이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다만 스토리 개연성에서 약간 부족함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제작진의 의도가 만약 "선과 악은 언제나 뒤 바뀔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연출한 거라면 꽤 좋은 연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시청한 '눈이 부시게'가 알츠하이머 시점으로 세상을 들여다본 느낌이라면 왕좌의 게임은 선한 의지를 가지고 세상을 바꿔나가려는 한 인간이 자신의 꿈이 점점 좌절되는 느낌을 받았을 때 변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 것 같습니다.

 

화가 나는 많은 사람들은 대너리스에게 철저하게 감정이입을 하고 봤을 확률이 높아요. 어차피 스토리를 보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캐릭터 하나에 빙의해서 보게됩니다.

 

 

간접경험이라고 하죠. 그렇게 대너리스에 감정을 이입해서 보는데 갑자기 죄 없는 주민들을 죽여버리니까 마치 내가 죽인듯한 불쾌한 느낌이 들게 되는 거죠. 위의 사례에서도 미군이 사람들을 학살하긴 했지만 평생 죄책감을 떠안고 살아갑니다. 여기에서 제작진의 의도가 드러납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사람은 변할 수 있다"입니다. 이 말은 5화가 끝나고 제작진의 인터뷰에도 있었습니다. 대너리스를 통해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사람이 변할수 있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왕좌의 게임 이전에도 이와 같은 주제로 나왔던 영화가 있었죠. 바로 다크 나이트입니다.

 

다크 나이트에서 하비 검사는 '선'을 상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자신이 처한 환경이 달라지자 180도 변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배트맨이 구속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대신해서 배트맨이라고 밝히고 감옥까지 갈 정도로 희생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는 180도 변하게 됩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일부로 그의 얼굴에 반쪽만 화상을 입게 만들어 사람은 누구나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 단지 인간은 환경에 의해 변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비 검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납치에 가담했던 사람들에게 복수를 시작합니다. 납치에 가담한 사람들을 만나 동전을 던져 '검게 그을린면'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 무참히 살해합니다.

 

 

실제 사례 미군과 드라마 왕좌의 게임 대너리스 그리고 영화 다크 나이트의 하비 검사는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분노를 참지 못해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누구나 환경이 바뀌면 악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개연성이 부족해도 충분히 대너리스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왕의 자질'을 논하기 전에 일단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대너리스는 가장 강력했던 견제세력 나이트킹이 없어지고 눈치볼 대상이 없어졌습니다.

 

권력은 한명에게 몰아주는것보다 여러 세력에게 나누어 주어야 잘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도 붕당정치를 도입했습니다. 또한 왕은 언제나 타락할지 모르기 때문에 믿을수가 없어서 교육하고 또 교육시키고 그랬죠. 그렇게 혼자 권력을 가지게 되는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어쩌면 왕좌의 게임 마지막회에서 나이트킹은 부활할지도 모릅니다. 이전에 선조들이 무소불위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나이트킹과 북부의 조상들이 협정을 맺고 아기 한명을 받치기로 한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권력은 한명에게 가는것보다 분산되어야 폭주를 막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은 조커와 배트맨의 대화로 끝을 내겠습니다.

조커 : 태풍이 몰아쳐도 깊게 뿌리내린 나무는 안 쓰러지는 법이지. 네놈을 타락시키는 건 불가능해. 

배트맨 : 고담시엔 아직도 선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

조커 : 천만의 말씀 얼마 못가. 검사 하비 덴트의 이중성을 목격하고 그가 한 짓들을 보면...

 

위에서 조커가 말하는 태풍이 몰아쳐도 깊게 뿌리내린 나무는 배트맨을 뜻합니다. 왕좌의 게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나온 캐릭터 '존 스노우'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게 나오기 때문이죠. 존 스노우도 배트맨처럼 아무리 타락시키려고 해도 타락하지 않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렇게 타락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소수에 불과하죠.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극 소수입니다. 왕좌의 게임에서 환경에 따라 사람이 보여주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 '티리온'이 가장 왕좌 자리의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배트맨이 몰고있는 오토바이에 치여서 죽기위해 조커는 꿋꿋이 버티고 서있지만 비켜가는 배트맨

 

※ 참고자료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4920477

 

몸은 기억한다 -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30년 이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분야를 연구한 베셀 반 데어 콜크의 최신작. 트라우마의 개념과 치료 방법의 발달 과정, 다각도로 연구 개발된 치료법들을 소개하며 트라우마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 주는 책...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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